꽃이 내게 말했다

보라빛 여름꽃, 아가팬터스

by 진그림
그림묵상/ 진그림

자카란다의 보랏빛 꽃이 떨어질 때면, 어김없이 아가팬터스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누군가 교대로 무대를 준비한 것처럼, 한 생명이 물러나면 또 다른 생명이 그 자리를 채운다. 어떻게 이 식물들은 저마다의 ‘때’를 그렇게 정확히 아는 것일까.


텃밭과 산책길에서 식물들을 가까이 바라보다 보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가 저마다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싹이 돋고, 줄기가 여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마침내 시드는 그 모든 흐름이 우연이 아니라는 듯 정교해서 경이롭기까지하다. 그리고 시듦이 끝이 아니다. 다음 계절에 또 피어난다.


이 자연의 질서 앞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시간표를 제대로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내가 원하는 성과와 목표를 위해 동동거리는 조급함과, 가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날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꽃들과 나무들은 서두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는다. 각자에게 정해진 계절을 따라 묵묵히 피어날 뿐이다.


자연계에서 인간만 욕심을 부리고, 신의 영역을 침범하며 제멋대로 살고 있는 듯하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헤아리는 일조차 잊은 채, 끝없이 앞서가려 발버둥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가팬터스가 그런 나를 멈춰 세워 말하는 것 같다.

' 당신에게도 ‘때’가 분명히 주어져 있어요. 피어야 하는 때, 잠잠히 뿌리를 돌봐야 하는 때, 열매를 거두는 때, 그리고 조용히 다음을 기다리는 때... 잠잠히 그 때를 기다리며 서두르지 말아요.'


아가펜터스를 보며 기도했다.

주님, 저에게 허락하신 시간표대로,

그 흐름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 힘과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왼쪽 자카란다, 오른쪽 아가팬터스 / 진의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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