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니요? 가능합니까?
어릴 적부터 항상 마음에 걸리던 말씀이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아이였던 나는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기쁨은 상황에 따라오고 가는 감정인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 또 사람이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지?
세월이 흘러 이만큼 살아보니 이 말씀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 ‘범사에 감사하라’는 문장은 이제는 이전보다 훨씬 마음에 와닿는다. 왜냐하면, 좋지 않은 일들조차 결국 나를 선한 자리로 이끌었던 경험들이 조용히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억울했던 날도, 뜻대로 되지 않던 순간도,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더 깊고 넓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조금씩 배워 가며, 분명히 알 수 없어도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도 어느 순간 이해되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 짧은 기도를 반복하던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였다. 그들의 목표는 긴 시간을 들여, 간절히 무릎 꿇고 간곡히 부르짖는 것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조용히 리듬을 타며 노래를 부르듯이, 자신의 호흡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의 자세였다. 언제나 의식의 바닥에서 ‘주님’이라는 방향을 향해 서 있는 영혼의 태도. 나는 그게 ‘쉬지 않는 기도’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께 조용히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 그렇게 생각하자 기도는 ‘행위’가 아니라 ‘영혼의 깨어있는 상태’ 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잘 다가오지 않는 말씀이 하나 있다.
바로 “항상 기뻐하라.” 이것만큼은 아직도 마음 한편에서 어려움으로 남아 있다. 기뻐할 수 없는 순간들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속상한 일이 생기고, 억울한 오해가 생기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지고, 온 힘을 다해 준비한 일이 순식간에 엉키고, 몸이 아파 아무것도 못하는 날에는
‘기뻐하라’는 말 자체가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 말씀을 ‘억지로라도 기쁨을 짜내거라'라는 감정에 명령하시는 게 아니라, 내 기쁨의 근원이신 그분에서 멀어지지 말라는 부르심으로 생각해 보았다.
상황이 아닌 하나님께 시선을 둘 때만 유지되는 내적 평안,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내속에서 계속 타고 있는 기쁨의 빛. 하루가 무너질 듯 흔들려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 내 기쁨의 근원. 나의 주, 하나님 아버지.
그래, 그랬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 ”께 집중하다 보면, 상황과 아픔과 감정을 뛰어넘어 나를 붙드시고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곤 했다. 그리고 그분만이 주시 내적기쁨이 있는데, "항상 기뻐하라"는 그 기쁨에 늘 잠겨있는 상태가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통해
기쁨도, 기도도, 감사도 나 스스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들은 오직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야 비로써 조금씩 자라나는 열매들 임도 알게 되었다.
아침엔 목에 담이 와서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이 말씀을 의지하기로 했다. 드러누워서라도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마음을 먹었다. 내 몸상태와 외적환경이 전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그분의 정원에서 참기쁨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