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

by 진기유

할머니는 바닥으로 눈길을 한 번 주었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신문이 몇 월이라니, 무슨 소리냐?”

“제일 아래쪽 신문 작년 11월자인데 혹시 언제 깔았는지 기억나세요?”

“작년 11월 신문이 뭐 어쨌다는 거냐? 언제 깔았으면 왜? 겨울에 깔았겠지 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할머니의 입꼬리는 축 쳐졌고 입술을 내민 부루퉁한 얼굴이 되었다.

“아아, 이 신문이 언제부터 이 밑에 있었냐, 그 말이 하고 싶은 거냐?”

할머니는 허공에 박수를 한 번 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가 조리대를 짚고 섰다.

“이 신문 이거 내가 얼마 전에 깐 거야, 엉? 깐 지 얼마 안 됐어!”

옆집까지 들릴 법한 우렁찬 소리였다.

“언제 깐 신문지면 왜, 그런 거 들춰보고 확인하고 있었니?”

“무슨 말씀이세요? 바닥 한번 싹 정리해 보려고 신문지를 들췄다가 알게 된 건데요.”

“있으면 있는 거지, 무얼 그걸 또 ‘언제 신문인지 보세요’ 이러니 너는?”

할머니는 나를 노려보고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전에 없는 살벌한 분위기에 말을 말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허 참, 아니 신문지 깔아놔서 깨끗하다는데 그건 또 왜 치우겠다고 해? 그냥 놔둬. 뭘 치워?”

“신문지 모서리에 먼지도 뭉쳐서 붙어 있고, 음식물도 떨어졌는데 그 위에 그대로 신문지를 까시고. 이게 어떻게 깨끗해요 할머니?”

“음식이 어디 있는데? 어디 떨어져 있다고?”

대화가 갈수록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이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하는가? 그러면 본격적으로 같이 싸우는 꼴이 되는 게 아닐까? 망설이고 있으니 할머니가 다시 물어왔다. 그저께 할머니가 된장찌개를 작은 뚝배기에 덜다가 떨어뜨렸던 애호박이 신문지에 떨어졌던 부근을 가리켰다. 허리를 숙여 위에 덮인 신문지를 들추니 그 아래 신문지 위에 호박이 말라 있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그걸 손으로 집어 떼어 내더니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그 조각 하나가 아니고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 깔린 비위생적인 환경인데, 도통 전달이 안 되고 있는 듯했다.

“내가 계속 새로 신문지 깔고 있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니?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그런 것도 모르니?”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나도 나지만, 저 발언은 할머니가 선을 넘은 것이라고 느꼈다. 할머니가 역으로 당당할 상황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새로 신문지를 까는 게 아니라 위에 계속해서 덮기만 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내가 다 치우고 새로 깔고 그러고 있어! 이거 제일 밑에 것도 저번 주인가 깐 거라고.”

할머니는 발치의 신문지를 툭툭 건드렸다. 말려 올라간 종이들 아래 파란 하늘과 그 아래 광장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 인쇄된 저 페이지는 봄이 끝나갈 무렵부터 바닥에 있었던 것이다.

‘이 이상 대화해도 결국 똑같아’

나는 바닥을 청소하는 것도, 할머니와의 대화도 포기하고 입을 닫았다. 할머니도 가만히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다음 달 말로 이사 날짜를 정했다. 마침 이 집의 계약 만기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보증금 반환도 준비하셔야 하고, 다시 세를 놓을 시간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이사 날짜를 정한 날 저녁 곧바로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충분히 예상을 하고 계셨던 듯, 어쩌면 바라신 걸지도 모를 정도로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래, 어디 봐둔 데 있니?”

그 상냥한 말투에, 불현듯 금요일에 내가 본가에 갈 때마다 아쉬워하며 ‘왜 이리 자주 가냐’고 하시던 얼굴이 떠올랐다. 이미 이사에 대한 말을 내뱉은 입술이 부르르 떨려 왔다.

“···단기로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옮기려고 해요. 회사도 옮길 수 있어서 아직 동네를 정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나중에라도 회사 가까이에 집 얻어서 살 수 있게 되면 더 좋은 거지, 안 그러니?”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들어 아무 대꾸도 못하고 설거지를 했다. 할머니는 아랑곳 않고 얘기하셨다.

“사람이 느낌이라는 게 있어. 네가 떠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이미 한참 전부터.”

느낌이라니, 내가 그토록 떠날 티를 냈는데 모를 수가 없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침묵만 지켰다.

“내가 말이야, 부동산에 갈 일이 있었을 때 한 번 얼핏 들었는데, 요 앞 큰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잠만 잘 집을 구한다고 하더라고.”

할머니가 일찍이 분위기를 감지하고 다음 세입자를 찾아 부동산에 이야기를 해 두셨나 보다. 그 생각을 하니, 그간 할머니도 말만 안 했지 여러 생각을 하셨겠구나 싶어 어깨에 힘이 빠졌다. 쟤가 왜 저러나 싶었을까, 할머니도 마주 웃으며 잘 지냈던 때가 아득히 멀게 느껴지셨을까, 다음 세입자를 빨리 구하지 않으면 수입이 끊어질까 봐 노파심이 났을까, 다시 홀로 지내게 된다고 느꼈을 때 어떤 기분이셨을까. 물론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과는 별개로, ‘그럼 다시 마음을 돌려서 이 집에서 계속 지낼 거냐’고 한다면 대답은 노였다. 참 복잡 미묘한 기분이었다. 고무장갑을 벗고 식탁에 함께 앉았다. 할머니는 내 침울한 얼굴을 달래듯 차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보증금은 예금도 안 넣고 그대로 통장에 있어. 언제든 돌려줄 수 있어.”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내가 나가는 것이 서운하지만은 않고, 어쩌면 정말로 후련한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기적이게도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다행이지 싶었다. 몇 달을 고민했던 이사인데, 혼자 살 생각을 하면 기분이 째지도록 좋았는데, 막상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나니 ‘이게 잘 생각한 건가’ 의심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참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이 집에서 나가겠다고 하면 ‘이런 더러운 곳에서 도저히 못 지내겠어요!’라고 외친 듯 통쾌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쾌감이 없었다. 후회일까, 슬픔일까, 허전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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