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조금씩 버릴 물건을 버리며 짐을 꾸리다 보니 회사에서 내 자리도 정리하고 싶어졌다. 책상 위의 파일들, 서류들, 업무 관련 서적들을 일일이 펼쳐가며 버릴 것 버리고, 내 뒤에 입사한 막내에게 넘겨줬다. 옆에서 유연 선배는 “뭐야, 어디 가려는 거야? 내일 안 나오는 거 아니지? 의심스러워.”라고 농담 섞인 질문을 했다. 소미 언니도 지나가다가 “왜 자꾸 짐을 싸? 어디 가려는 것처럼”이라고 했다. 하하 웃어 보였는데 얼핏 든 생각에 손이 멈췄다.
‘내가 방에서 짐 싸고 있을 때 할머니도 싱숭생숭하시려나’
여름이라 방문은 다 열고 생활하고 있는 데다가, 느릿느릿 집안을 가로지르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내 방 불빛이 닿는 곳에 우뚝 멈춰 섰다가 한참 뒤 다시 움직이는 걸 몇 번이나 들었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짐 싸는 걸 구경하시려고 멈춰 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언니들의 반응을 보니 할머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올려진 것처럼 동작이 느려졌다. 할머니의 모든 부분이 싫어졌던 최근 몇 개월 간, 할머니의 호기심마저도 싫어했었다. 내가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뒤로 지나가며 목을 길게 빼고 뭘 먹는지 보고 가는 기척, 짐을 꾸리고 있을 때 멀찌감치에서 보는 기척. 할머니는 내게 애정이 식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에 대해 계속 궁금했던 것이다. 무엇을 먹는지, 반찬이 부족하지 않은지, 대충 때우는 건 아닌지, 짐은 어느 정도 꾸렸는지.
어느덧 이삿날이 다음날로 다가왔다. 작별인사는 내일 짐 빼기 전에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늘 아무 대화도 안 하기에는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토요일 낮. 밝은 햇살이 거실과 할머니의 TV방에 들어오고 있었다. 열린 문 밖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미니 TV를 보고 계시던 할머니가 흠칫 놀라는 눈치다.
“왜?”
“그냥요······.”
쭈뼛거리며 문지방을 넘어 들어가도 할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나도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할머니도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어색한 침묵만 흘렀다. 눈동자를 굴리는 내 눈에 TV화면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건지 화면이 시커매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저 화면 보이세요?”
“아니, 잘 안 보여.”
“언제부터 저렇게 됐어요? 뭐 눌렀다가 저렇게 된 거예요?”
“나도 몰라.”
아무리 보아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가만 보니 뉴스 화면이 어두운 화면 속에서 어렴풋이 움직이는 걸 보아서는 고장이 아니라 밝기 설정 문제인 것 같았다. 할머니 근처에 있는 리모컨을 들어 이리저리 버튼을 눌러 길을 찾은 뒤 + 버튼을 꾹 누르자 화면이 확 밝아지더니 시원시원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 어떻게 한 거니?”
할머니께 어떤 걸 눌러 어떻게 한 건지 설명을 해드렸다. 할머니가 이해하고 기억하기에 어려워 보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기억에 남게끔 문제의 원인부터 차근차근 말씀드렸다.
“와, 잘 보이네. 너무 깨끗하게 잘 보이네. TV를 새로 사야 하나 생각했는데.”
웃음기 없이 기뻐하는 신기한 모습으로 할머니는 연신 ‘TV가 고쳐졌다’며 좋아하셨다.
“이런 문제 있으면 저한테 물어라도 보시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원래도 민폐를 절대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왕 할머니가 가뜩이나 ‘다가오지 마’라는 아우라를 풍겼던 최근의 내 행동에 선뜻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 자신에게 속상했다.
이삿날 찾아온 엄마를 보고 할머니가 반가워하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한 번을 안 와요 그래? 처음 들어올 때 보고 이제 나갈 때 보네.”
이날만큼은 나도 할머니와 오래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기도했다.
“밥 잘 챙겨 먹으면서 지내고. 회사 잘 다니고.”
“할머니도 식사 꼭 잘 드시고요. 몸조심하시고 건강히 지내세요. 저 놀러 올게요.”
할머니의 손은 작고 강인했다. 원래도 촉촉한 할머니의 눈망울이 더 반짝이는 걸 보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둘 다 한동안 손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었다. 짐이 현관 밖으로 날라지며 방이 비어 가는 모습을 식탁에 앉아 망연히 바라보는 할머니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 같은 것이 떠올랐다. 어느새 짐이 다 나간 뒤, 현관으로 배웅을 나오는 할머니를 돌아보며 간신히 눈물을 참고 말했다.
“할머니, 포옹 한 번 하실래요?”
할머니는 의외로 선뜻 팔을 벌려주셨다. 평소 같으면 ‘무슨 포옹이야 글쎄’라며 타박을 하셨을 것 같은데. 덩치가 커 보였던 할머니의 몸집은 의외로 작았다. 내 등을 감싸 안은 할머니의 손이 조심스러웠다. 어설픈 포옹을 끝내고 이윽고 문 밖으로 나섰을 때, 11층의 공기와 소리를 한껏 들이켰다. 안녕, 이 모든 공간에게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잘 지내다 갑니다, 안녕.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려는데 할머니도 신발을 신고 복도에 내려왔다. 들어가시라는 나와 엄마의 권유를 뿌리치고 “저, 엘리베이터까지만.”이라고 단호히 말하셨다. 다 같이 묵묵히 긴 복도를 걸었다. 언제나 본가에 가는 저녁마다 문을 열고 내 뒷모습을 배웅해 주시던 할머니. 그 배경은 계절에 따라 밤이기도 했고 대낮같이 훤하기도 했다. 몇 번을 그 풍경을 눈에 담았었지? 그 풍경이 그리워 뒤를 돌아보니 현관문은 닫혀 있고 내 뒤에 바짝 붙어 할머니가 따라 걷고 있었다. 할머니가 놀라 물었다.
“왜? 뭐 두고 왔니?”
갑자기 뜨거운 게 울컥 올라오는 느낌에 소리 내어 말을 못 하고 고개만 도리도리 흔들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한 층 한 층 올라오는 숫자를 볼 때마다 헤어질 시간의 카운트다운이 되는 듯한 기분에 입이 점점 무거워졌다. 허무하리만큼 일관된 침묵 속에 엘리베이터의 ‘땡!’ 하는 도착음이 울렸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건강히 계셔야 해요. 새로운 사람 들여서 즐겁게 지내시고요. 저 놀러 와도 되죠?”
“놀러 와, 놀러 와. 언제든 환영입니다.”
엘리베이터를 경계로 나누어 선 뒤 문이 닫힐 때까지 서로 손을 흔들었다. 문이 닫히는 찰나의 순간, 애써 미소 짓던 할머니의 입꼬리가 내려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소리 죽여 울었다. 당장이라도 이사 취소하겠다고 하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었다. 긴 갈등이 있었고, 타협점을 찾기 어려웠고, 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할머니가 이 이별을 1년도 아니고 반년도 아니고 불과 두 달 조금 안 되는 시간 전에 통지를 받게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텅 빈 방을 보며 얼마나 외로우실지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이사를 물리고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
나중에서야 엄마는 내가 이삿짐을 나르느라 분주했던 사이 할머니가 하신 말을 들려주셨다.
“할머니랑 싸웠었니? 크게 싸웠는데도 와서 TV 고쳐주더라면서, 저런 딸 있어서 좋겠다고 하시더라. 대체 할머니랑은 뭐라고 싸운 거야?”
칭찬인지 고자질인지 모를 이야기에 잠시 주저했지만 이내 그간의 일을 간추려서 들려드렸다. 엄마는 안 그래도 신문지들을 보고 비위생적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체력 떨어지고 청소 횟수를 줄이려 하는 할머니가 안쓰럽다고 했고, 그걸 내가 이해하고 묵묵히 신문지를 교체해 드리거나 청소를 할 마음이 있으면 같이 살 수 있을 텐데 세입자로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니 이 작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채로 작별한 게 아니고 TV도 손 봐 드리고 나름 좋게 마무리하고 나와서 다행이라고 위로해 주셨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음이 썩 편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새롭게 거처를 옮기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할머니가 떠올랐다. 이 요일 이 시간이면 할머니는 목욕탕에 갔다가 돌아오실 시간인데, 오늘도 가셨을까. 이 시간이면 아파트 마당에 선 장에 가셨을 텐데. 시간이 흐르며 할머니를 떠올리는 빈도가 줄어가던 2년 후, 언젠가 놀러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자는 결심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