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

by 진기유

해가 바뀌고 1월 1일, 신정이 되었다. 내 진짜 할머니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니 함께 살았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새해 인사 차 전화를 드려야지.


1월 2일이 되었다. 회사 시무식이 끝난 뒤 업무를 좀 보다가 손이 잠시 비게 되어 탕비실에 갔다. 휴대폰에서 할머니의 집전화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수십 번 흘러도 받지 않으셨다. 외출 중이신가 싶어 휴대폰으로도 걸어 보았다. 사실 휴대폰은 언제나 방전인 채 방치하시던 분이라 집 전화가 더 연결될 확률이 높다는 걸 알지만. 역시나 1분 넘게 들고 있어도 받지 않으셨다. 저녁에 다시 걸어보기로 하고 탕비실에서 나왔다.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야 할머니께 전화하려 했던 게 생각났다. 집 전화는 여전히 불통이었다. 휴대폰으로 걸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방문했을 때 새로운 휴대폰으로 바꾼 걸 보여주셨던 게 기억났다. 깔끔한 보라색 폴더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시던 모습이 떠올랐고, 이전의 고물 핸드폰과 달리 벨소리가 안 들릴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며 인내심을 발휘해 통화연결음에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여보세요.”

30대로 느껴지는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놀랐지만 차분한 목소리를 가장하여 물었다.

“이은강 할머니 휴대폰 아닌가요?”

“아닌데요.”

순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번호는 맞는데.

‘돌아가신 것일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 실례지만, 이 번호 쓰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물으면 과연 대답해 줄까. 다행히 상대방은 대답을 해줬다.

“음···, 한 3개월 정도 됐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잘못 걸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고 부동자세로 생각에 잠겼다. 3개월이라면 꽤 최근인데. 할머니가 3개월 전쯤 돌아가셨다는 말이 아닐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확신과 비슷한 느낌이 가슴 한편에 생겨났다. 누가 아니라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갈증처럼 밀려 올라왔다. 휴대폰을 다시 들어 올렸다. 그 아파트 관리실 번호가 아직 남아 있을 터였다. 있다! 비교적 젊은 남자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늦은 시간이라서 전화가 기계실로 연결이 됐다고 설명해 주며, 기계실에서는 경비실로 전화를 연결해 주는 게 불가능하다며 102동 경비아저씨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바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가 간 뒤 시끄러운 주변음이 먼저 들려왔다. 그 뒤 무신경하고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쇼!”

“OO아파트 102동 경비아저씨 맞으신가요?”

“어디요?”

“OO아파트요.”

“OO? 어디 있는 OO아파트요?”

“△△동 OO아파트요.”

“아니 이 번호는 어떻게 알고?”

“기계실에서 가르쳐줬어요.”

“기계실에서 가르쳐 줬다고요?”

번호가 잘못되었나 생각할 때 아저씨가 말했다.

“거기는 내가 10년 전에 있던 곳인디?”

그 뒤 상황을 수습하고 통화를 마쳤다. 기계실도 참 허술하구나, 생각하며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불안을 억누르며 내일 아침에 다시 집 전화로 전화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어쩌면 할머니가 휴대폰은 사용할 일이 없다고 없애신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

오전 9시. 회사 탕비실로 가서 집 전화번호로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으셨다. 이번에는 경비실 번호도 의심스러워 아파트 관리실 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여자가 받았다. 대략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며 경비실로 연결해 주길 요청하자 그녀는 흔쾌히 연결해 주었다.

한참 뻐꾸기 왈츠 선율이 들리다가 음악이 끊어지고 아저씨 목소리가 등장했다. 간단한 인사 후 최대한 또박또박 연락한 이유를 설명했다. 마치 내가 설명을 잘하면 당장 할머니께 전화가 연결될 거라 여기듯이. 설명을 듣던 아저씨가 중간에 끊고 질문했다.

“몇 호라고요?”

“1102호요. 11층 2호에 할머니 계시잖아요?”

“1102호라고요? 돌아가셨어요. 아니 그 할머니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시간이 멈춘 듯했다. 소리가 뭉툭하게 울리는 물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밀려온 것은 ‘왜 한 번이라도 더 가 보지 못했을까’하는 후회였다. 그 사이 통화는 몇 번인가 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통화가 언제였더라? 여름? 가을? 다시 목소리를 낼 때 내가 떨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아··· 돌아가셨어요? 언제쯤이요?”

“한··· 3개월도 더 됐죠.”

“그럼 그 집은 완전 빼셨나요?”

“아니, 그··· 자제분들 왔다 갔다 하는 것 같기는 한데요?”

“자제분이요? 동생분이나 그 가족들이 아니고요?”

“네. 자녀분이 계세요.”

“네···”

잠시 멍하니 있는 동안 아저씨는 기다려 주었다. 같이 사는 동안 자식이라곤 연락 하나 없었고, 존재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그리고 할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을까. 편안히 가셨을까.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돌아가신 건 집에서 돌아가셨나요?”

“네, 집에서 따님이 같이 사셨어요. 근데 따님이 아침에 할머니가 안 일어나셔서 보니까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주무시면서 편안히 돌아가셨다는 것에 대한 안도와 함께, 임종을 아무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같이 살던 시절, 열린 방문 너머 침대에서 할머니가 주무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3개월. 그동안 그 아파트 앞을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도 ‘잘 계시겠지? 언제 한번 또 가야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러는 동안 그 집에 할머니가 계시지 않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고, 그것도 모르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할머니가 잘 계실 거라 막연히 생각했던 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전화 건너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한 것처럼 머리를 흔들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네··· 그런가요? 할머니가 저랑 계실 때 정말 잘해주셨는데 인사도 못 드리고···. 혹시 보호자분 연락처 알고 계신 거 있나요?”

“아니, 그 양반들 연락처는 갖고 있는 게 없어요. 한 번씩 왔다 갔다는 하는가 본데. 아니다. 돌아가신 그즈음에는 봤는데 그 후에 그 집 자식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건 본 적이 없네요.”

불현듯 머릿속에 ‘대부’라는 단어가 찍힌 봉투와, 거기 적혀 있던 이름 ‘김경’이 떠올랐다. 2년여 시간 동안 할머니께 자녀가 있다는 기척은 전혀 없었고, 그나마 할머니가 거론했던 것은 ‘아들’이었다. 그런데 돌아가실 때 곁에 딸이 있었다고?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졌을 때, 평소 살갑게 다가오던 김경이라는 사람을 곁에 두었던 게 아닐까.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손녀라고 소개했듯, 동거인을 딸이라고 소개하고도 남았다. 김경 모녀에 대한 금전적으로 뒤가 구린 이야기들이 떠오르며 어딘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이 자녀분인 건 맞을까요?”

의심을 참지 못하고 말이 나갔다.

“그야, 제가 그분들 붙들고 진짜 자식 맞냐며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것까진 모르지만 그 당시에 경찰도 오고 병원에서도 오고 그랬었어요. 자녀분이라고 몇 명 더 오기도 했고.”

자녀가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라니,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경찰도 왔었다 하고, 사망신고 절차도 다 밟았을 텐데 내가 괜한 생각을 한다 싶었다.

“아저씨, 이렇게 소식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휴, 아니에요. 아니 이런 거야 뭐 숨길 것도 없고 당연히 알려드리는 거지요.”

전화를 끊은 뒤 벽에 기대 잠시 마음 놓고 울었다. 사무실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멍했다. 할머니께 한 번이라도 더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했고, 돌아가신 날짜도 모르고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다는 것이 답답했고, 지금이라도 할머니가 잠드신 곳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평소처럼 일이 바쁘면 또 흘러가듯 잊고 일을 할 텐데, 내가 담당한 국가가 연휴 기간이라 비교적 한가했다.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물이 나면 닦고 또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그런 반복이었다. 할머니의 죽음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서 각오하고 걱정하고 있던 일이라 큰 충격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과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도 멀쩡한 목소리로 통화를 나눴다는 생각, 한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과 아쉬움, 외할머니와 한 살 차이인데 돌아가셨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등이 큰 상실감을 주었다. 그래, 이건 슬픔이 아니라 상실감이었다. 나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보시던 할머니의 표정, “찐기유”, “기유야”라고 부르시는 목소리가 선명히 떠올랐다. 할머니랑 함께 살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니까 갑자기 전생처럼 먼 옛날 일로 느껴졌다. 함께 살 때도 어디가 많이 아프시고 손가락이 부러져서 수술도 받으시고 다리를 절고 잔병치레가 많았지만, 장수하실 줄 알았다. 만 83세로 돌아가신 할머니.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밤중 쓸쓸히 눈을 감으셨을 할머니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참 허망하고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다.


다음 주 마지막 편 40화가 있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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