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므라이스나 닭볶음탕을 먹을 때 할머니가 생각났다. 김치찌개나 카레라이스를 먹을 때 할머니가 생각났다. 낫또를 먹다가 늘어난 실을 없애려고 허공에서 손짓을 할 때 할머니가 생각났다. 내가 바쁘게 손을 놀리며 낫또를 먹는 모습을 할머니는 언제나 재미있어하셨다. 그때마다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서 홀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할머니와 다투었던 순간들도 멀리 떨어져서 떠올려 보니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었다. 내가 할머니를 정말 가깝게 생각했구나, 다투기까지 했다니. 왜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더 소중히 하지 않고 편하게 생각해 버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폭소를 터뜨리며 웃었던 순간도 떠올리곤 했다. 그 시간들을 진심으로 좋아했었는데, 방을 빼기 전 몇 달은 어떻게 그렇게 대화도 줄고 얼굴조차 보기 힘들게 지냈었을까. 할머니가 침침한 식탁에서 홀로 식사하실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언제나 새로운 룸메이트와 함께 있을 할머니를 애써 상상해보곤 했다.
회사에서의 야근, 친구들과의 만남, 여행, 출장, 휴식 등으로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초봄, 할머니의 집 전화로 전화를 했다. 함께 지낼 때, 할머니는 휴대폰도 사용하셨지만 언제나 방전되어 꺼져 있거나 충전기에 꽂아둔 채 잊고 외출하시는 등 무용지물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집전화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TV방에서 TV를 보고 계시면 벨소리가 아무리 울려도 못 듣곤 하셨다. 내가 알려드리거나, 할머니가 마침 방 밖으로 나온 타이밍이거나, 주무시러 아예 방을 나선 타이밍이어야 통화가 가능했다. 그걸 알기에 더더욱 할머니 집에 가지 않았던 것도 있다. 가려면 미리 연락을 드려야 하고, 연락을 하려니 불통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데 이번에는 연락이 닿았다. 밤늦은 시간을 노려 전화를 했더니 신호연결음이 끝도 없이 울리다가 끊을까 싶던 찰나에 받으셨다.
“여보세요.”
오랜만에 들은 것도 있지만 할머니의 전화 목소리가 낯설었다. 잠에서 깬 듯한 느낌이었다.
“할머니? 저 기유예요.”
“기유? 오오, 찐기유!”
할머니는 잠시 틈을 가진 뒤 바로 알아들으시고 밝게 외쳤다. 할머니는 마침 TV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걸어가던 참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서로의 근황에 대해 묻고 이야기하고, 방문할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전화를 끊은 뒤 들뜬 마음으로 다이어리에 표시를 했다. 이렇게 통화 한 번 하기 어려워서야! 그래도 마침 날도 따뜻하고 새로운 기분이 샘솟는 가운데 좋은 재회가 될 거란 느낌이 들었다.
토요일, 직장인 동호회 활동에 가기 전 이른 오후 오랜만에 그 아파트 정문에 섰다. 내가 이 문을 얼마나 드나들었을까. 나중에는 정문이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않고 다녔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전과 다름없이 피어 있는 벚꽃을 보며 그곳의 공기를 들이켰다. 아, 정말 오랜만이다.
그토록 뻔질나게 지나다니던 길인데 2년이 지나고 돌아오니 어느새 남의 동네가 되어 있었다. 크게 바뀐 건 없겠지만 마음이 달라졌다. 나는 방문자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어 아무도 뭐라 한 사람이 없는데도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저기 저 집, 저 창문 안쪽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든든했다. 102동에 도착했다. 서늘한 1층 엘리베이터홀에 서자 지난날 퇴근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때가 떠올랐다. 그땐 뭘 그리 피곤해했었는지, 이곳에서 크나큰 해방감을 느끼며 어서 올라가 가방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설레곤 했었다. 밝은 대낮이지만 얼마든지 늦은 밤 그곳에 서 있던 때를 떠올릴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이렇게 좁았었나?’하는 생각을 하며 탑승했다. 알게 모르게 이곳저곳이 낯설어져 있었다. 11층에 내리자 ‘다시 왔다’ 하는 느낌이 들며 무기질의 복도 타일마저 반갑게 보였다. 아직 날이 완전히 덥지는 않아서 모든 집의 현관문은 닫혀 있었다. 여름이 되면 또 다들 현관문을 열고 방충망을 치고 지내겠지? 그때 다시 와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 집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딩동-
‘이 집 초인종 소리가 이랬었나?’
생경하게 느껴지는 소리에 내가 여기 살 때는 초인종 누를 일도 없었고 누가 찾아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남의 집’에 왔다는 실감에 전율이 일 지경이었다. 내가 떠나던 때와 같은 복도인데 나는 주민이 아니고 방문자가 되어 있었다. 여러 생각을 하던 중 어렴풋이 슬리퍼를 끌며 천천히 걷는 발소리가 현관문 너머에서 가까워지고 있었다. 발걸음이 예전보다 더 느려진 것 같았다.
철컥, 하고 열린 문 너머에서 여전히 뽀얗고 예쁜 할머니가 소 눈망울 같은 눈동자를 밝히며 문을 열었다.
“할머니이!”
“하하.”
우리는 부둥켜안았다. 잠시 뒤 할머니는 어색한 미소로 내 얼굴을 살폈다. 할머니의 얼굴은 아주 조금 창백하고 지친 기색이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 내가 살았던 방을 들여다보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방인 티가 역력했다. 내가 뒷사람 쓰라고 두고 간 책꽂이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못 보던 책걸상이 있었다. 2000년대 이전에 학교에 있던 가느다란 알루미늄 다리가 붙은 그 책걸상이었다.
“제 뒤에 누가 안 살았나요? 저 책걸상은 뭐예요?”
“살았지. 살다가 금방 나갔어. 저거는 여기 옆 아파트에서 주워 왔어. 사람들 이주 나가라고 되어서.”
“이주요?”
거실 베란다로 가 옆 아파트 단지를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대낮이라 불빛이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유독 어두컴컴해 보이는 거실 창에는 하얀 스프레이로 크게 엑스자가 그려져 있고 여기저기 ‘공가’라고 쓰여 있는 창문이 가득했다. 저런 걸 보며 혼자 지내는 할머니가 더 외로우실까 봐 가슴이 아팠다.
오랜만에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그간의 안부를 나눴다. 얼핏 둘러보니 바닥의 신문지는 이전보다 줄어 있었다.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으신 건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더운 날씨 속 예전보다 쾌적한 집안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이 아파트의 재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는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으려나 모르겠다’라고 했다. 아직 이주 명령도 나오지 않은 상태인데 과연 건물을 허물고 새 아파트를 세웠을 때 들어가 볼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고 말하시는 얼굴을 보며 급하게 “그런 말씀 마세요. 건강하게 입주해서 새 아파트에서 지내실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끄덕였다. 할머니는 내가 들고 온 악기를 가리키며 오랜만에 음악 좀 듣자고 청하셨다. 흔쾌히 악기를 꺼내 요즘 한참 레슨을 받으며 진도 나가고 있는 곡을 들려드렸다. 그리고 그 뒤에는 트로트 몇 곡을 즉흥적으로 연주해 드렸다.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악기 소리가 들리니까 사람 사는 집같고 차암 좋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엄지를 올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히 새겨질 거란 예감이 들었다. 모자란 실력인데도 즐겁게 들어주셔서 감사할 뿐이었다. 할머니가 깎아 내 주신 과일을 먹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뒤 동호회에 갈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가우면서도 대화 주제가 금방 바닥 나 버려 어딘가 어색한 시간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할머니는 또 놀러 오라며 따뜻하게 배웅해 주셨다. 예전에 그랬듯 할머니는 현관문을 열고 서서 내가 복도 저편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계셨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홀로 몸을 틀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차분한 기쁨이 느껴졌다. 오기를 잘했다, 할머니가 건강히 계셔서 참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11층에서 보이는 하늘을 눈에 담았다.
그 뒤 몇 달 지났을 때, 할머니로부터 내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시간 되면 언제 한번 오라는 연락이었다. 할머니가 내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손수 전화를 주시다니, 놀라웠지만 해외 출장을 앞두고 있는 데다가 출장 준비에 바빠 당장에 갈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출장 이후 찾아뵙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러고는 그 약속을 잊고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다음 주에 가면 되지, 다음 달에 가면 되지, 그렇게 미루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연말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