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의 트라우마

故 이어령 작가님의 노래들

by 염진용

대문호(大文豪) 이어령 선생님의 노래들. 마지막


나이를 먹어도 몸이 먹지 정신은 항상 어릴 적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 인듯하다. 심리학자들이 어떤 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려 할 때 가정을 보고 어릴 적 성장 환경을 둘러보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인 듯하기도 하고.


물리학적으로는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래도 존재하지 않고 항상 현재만 존재한다. 이글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그 점은 또다시 과거의 흔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우리 스스로를 희망 고문하는 삶 속에서 그 끝은 '죽음'임을 선생님은 잘 알고 계셨다. 예수님의 옷자락 끝 어디라도 부여잡고 싶은 심정도 말씀하셨다. 아마도 당신 삶의 연장이 아니라 우리와의 인연을 끊고 싶지 않은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조심스레 선생님의 글속에서 플레이 리스트를 적어 봅니다.


하늘이 내리신 문필가의 곡 해설을 감상해 보시고 '소월의 시' 앨범을 감상하시면 적어도 오늘 하루는 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옹알이 소리와 엽기의 조화를 노래한 상어 가족


핑크퐁-상어가족.jpg 핑크퐁-상어 가족 2017


이 노래가 기막힌 것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이 특별한 것도 아닌데, 세계적으로 히트한 이유가 뭘까?


여기 <상어 가족>의 특성은 한국 특유의 의성어 음성 묘사의 매력, 그 곡에 붙는 '뚜 루루 뚜루'라는 의미 없는 옹알이 소리인 게다. <청산별곡>의 후렴인 '얄리얄리 양라셩얄라리랐다'와 같은 효과다.


'뚜 루루 뚜루'하는 소리가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들리면서도 거기에서 새로운 배냇 말, 자기네들이 어렸을 때 들었던 자연의 잠자던 언어가 깨어난다. 이 세계의 문명인들이 거의 상실한 옹알이 말의 의성어들을 한국인들은 용케도 막문화를 통해 지금까지 지켜왔던 것이다. 막문화 속에 남아 있는 원초적인 문화 막사발에 미역국을 먹듯이 그 힘이 세계의 한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상어 가족>도 모두 잡아먹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들어서는 안 될 정도로 엽기적이다.

한마디로 자연에 가깝다는 것 양성의 세계와 어린이가 통해 있다는 것이다. 반문명 반문화가 합쳐져 한류를 만들어 내는 공식이 <상어 가족>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다.




'랑 효과'의 지대함을 노래한 '꼬부랑 할머니'


꼬브랑 할머니.jpg 굴렁쇠 아이들-꼬부랑 할머니 2005


"옛날 옛적 갓날 갓적에"라는 말만 떨어지면 갑자기 세상이 달라진다. 지렁이가 용이되고 닭이 봉황으로 바뀌는 이야기 세상 말이다. 밭일을 하던 농부가 우렁각시를 만나고 산에 간 나무꾼이 선녀와 산신령과 이야기한다.


그래. 자장가와 꼬부랑 할머니의 이야기. 둘을 놓고 생각해보면 의외로 그 궁금증이 시 풀릴 수도 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이 자장가의 '자장~ 자장'과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꼬부랑'의 반복음이다.


'꼬부랑 할머니'의 노래에서 긍정의 대답 '응응(oo)'의 '이응'문화를 꿰뚫어 보셨고 '너랑 나랑'처럼 <청산별곡>의 '머루랑 다래랑'을 말씀하시며 '호모 나랑스'의 문화 유전자론으로 마무리 지으셨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짝꿍과 싸우고 여름 방학이 되어 얼굴 볼일이 없어졌는데 미안한 마음에 친구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글의 첫머리는 '너랑 나랑' 무척이나 친하지 않았니?로 시작하는 편지였다. 효과 만점의 편지였다. 개학을 하고 친구가 다가와 미안하다고 다시 친하게 지내보자고 하는 것 아니 겠는가! 선생님이 말씀하신 '호모 나랑스'의 유전자의 그 깊은 뜻은 누구에게나 서로서로 통하는 것이 분명하다.




자운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해 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송기창-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jpg 송기창-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Ver.2) 2018


내가 캐려 했던 나물은 자운영이었다. 그건 오래전부터 초근목피로 연명해온 농촌의 비상식량 품목에 드는 나물이었다. 순사에게 잡혀갈 수도 있는 자운영을 캔 것이다. 나는 누나에게 아무에게도 자운영을 캤다는 사실을 이르지 말라고 했고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했을 것이다. 그때 '순사 온다'는 말만 듣지 않았더라면 누나와의 봄나들이, 내 나물 캐기의 봄나들이는 완벽한 해피엔딩이 되었을 것이다.


해방되고 난 한참 뒤의 일이다. 학교에서 한국 역사와 한국 시를 배운 뒤의 이야기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그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가는' 봄 들판은 바로 그날 내가 금지된 자운영을 캐고 두려움에 떨었던 그 들판이었던 것을 알았다.


들판의 잡초와 나물 한 포기까지 빼앗긴 들판은 그 시를 읽고 훨씬 전부터 알았던 게다. 일본 순사의 '사베르' 소리에서 글자도 읽을 줄 모르던 아이가 이미 그 시의 운율을 듣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프랑스 말을 배우다가 그 '사베르'란 것이 실은 긴 칼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사브르'의 우스꽝스러운 일본식 발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브르'란 말에는 갈치라는 다른 뜻도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근엄한 제복에 갈치를 허리에 매달고 다니는 순사의 모습을 생각하며 혼자서 낄낄거리며 웃는다. 비로소 자운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순간이다.




꼬부랑길 속 소월의 노래

김상은-소월의 노래.jpg 김상은-소월의 노래 2011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부모는 과거다. 내가 훗날 부모가 되면 부모의 과거였던 시간이 내 훗날 미래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옛이야기의 의미다. 수천 년을 이어온 옛이야기. 그때 내 말이 있었고, 내 말이 또다시 수천 년을 이어 아이의 옛이야기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옛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바뀌고, 그 아이의 아이로 또다시 이어진다.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또다시 과거가 되어 미래로 탄생한다. 요즘 잘 쓰는 말로 '오래된 미래'라는 당착어법이 생겨난다.


시인 김소월의 '부모'다. 더 긴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가슴을 저미는 노래며 삶의 실천철학 이리라!




덧붙이며


이어령 선생님의 노래들을 적다 보니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한국인 이야기 '너 어디에서 왔니'에 노래가 많이 실려 있고 대부분의 노래가 동요와 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탄생을 이야기하며 어릴 적 자장가, 옛날 옛적 동요, 한류에 흐름을 만들어 낸 '상어 가족' 등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도 이런 노래만 듣지는 않았을 것이지-분명 문화 예술계의 수장을 역임하신 분이라 한참 더 많은 음악을 들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글에 놓인 노래들은 오히려 동심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굴렁쇠와 메멘토 모리'는 선생님 삶의 큰 축이었던 듯하고 이는 노래들로 살펴보았을 때 재즈나 클래식 팝, 트로트에 중심이 놓여있지는 않은 듯하다.


선생님의 십팔번은 무엇이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리고 저의 소박한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

명예가 중요하지 않다고 떠나는 길에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삶의 진리 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직은 명예를 중시하며 사는 산자들 중에 선생님께 노벨 문학상 주려는 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곳에서 받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 좋은 추억으로 남겨주셔야 하니까요. 우리의 추억이 선생님의 '진정한 명예'일 거라 생각합니다. 관직, 교수직, 논설위원 이런 명예 말고요!


한마디 덧붙이자면 '밥 딜런'이라는 가수도 그 상 받더라고요!

선생님은 그보다 열배 백배나 더 문학적이셨습니다."


노벨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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