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어령 작가님의 노래들
나이를 먹어도 몸이 먹지 정신은 항상 어릴 적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 인듯하다. 심리학자들이 어떤 이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려 할 때 가정을 보고 어릴 적 성장 환경을 둘러보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인 듯하기도 하고.
물리학적으로는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래도 존재하지 않고 항상 현재만 존재한다. 이글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그 점은 또다시 과거의 흔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우리 스스로를 희망 고문하는 삶 속에서 그 끝은 '죽음'임을 선생님은 잘 알고 계셨다. 예수님의 옷자락 끝 어디라도 부여잡고 싶은 심정도 말씀하셨다. 아마도 당신 삶의 연장이 아니라 우리와의 인연을 끊고 싶지 않은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조심스레 선생님의 글속에서 플레이 리스트를 적어 봅니다.
하늘이 내리신 문필가의 곡 해설을 감상해 보시고 '소월의 시' 앨범을 감상하시면 적어도 오늘 하루는 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옹알이 소리와 엽기의 조화를 노래한 상어 가족
이 노래가 기막힌 것도 아니고 애니메이션이 특별한 것도 아닌데, 세계적으로 히트한 이유가 뭘까?
여기 <상어 가족>의 특성은 한국 특유의 의성어 음성 묘사의 매력, 그 곡에 붙는 '뚜 루루 뚜루'라는 의미 없는 옹알이 소리인 게다. <청산별곡>의 후렴인 '얄리얄리 양라셩얄라리랐다'와 같은 효과다.
'뚜 루루 뚜루'하는 소리가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들리면서도 거기에서 새로운 배냇 말, 자기네들이 어렸을 때 들었던 자연의 잠자던 언어가 깨어난다. 이 세계의 문명인들이 거의 상실한 옹알이 말의 의성어들을 한국인들은 용케도 막문화를 통해 지금까지 지켜왔던 것이다. 막문화 속에 남아 있는 원초적인 문화 막사발에 미역국을 먹듯이 그 힘이 세계의 한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상어 가족>도 모두 잡아먹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들어서는 안 될 정도로 엽기적이다.
한마디로 자연에 가깝다는 것 양성의 세계와 어린이가 통해 있다는 것이다. 반문명 반문화가 합쳐져 한류를 만들어 내는 공식이 <상어 가족>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다.
'랑 효과'의 지대함을 노래한 '꼬부랑 할머니'
"옛날 옛적 갓날 갓적에"라는 말만 떨어지면 갑자기 세상이 달라진다. 지렁이가 용이되고 닭이 봉황으로 바뀌는 이야기 세상 말이다. 밭일을 하던 농부가 우렁각시를 만나고 산에 간 나무꾼이 선녀와 산신령과 이야기한다.
그래. 자장가와 꼬부랑 할머니의 이야기. 둘을 놓고 생각해보면 의외로 그 궁금증이 시 풀릴 수도 있다. 당장 눈에 띄는 것이 자장가의 '자장~ 자장'과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꼬부랑'의 반복음이다.
'꼬부랑 할머니'의 노래에서 긍정의 대답 '응응(oo)'의 '이응'문화를 꿰뚫어 보셨고 '너랑 나랑'처럼 <청산별곡>의 '머루랑 다래랑'을 말씀하시며 '호모 나랑스'의 문화 유전자론으로 마무리 지으셨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짝꿍과 싸우고 여름 방학이 되어 얼굴 볼일이 없어졌는데 미안한 마음에 친구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글의 첫머리는 '너랑 나랑' 무척이나 친하지 않았니?로 시작하는 편지였다. 효과 만점의 편지였다. 개학을 하고 친구가 다가와 미안하다고 다시 친하게 지내보자고 하는 것 아니 겠는가! 선생님이 말씀하신 '호모 나랑스'의 유전자의 그 깊은 뜻은 누구에게나 서로서로 통하는 것이 분명하다.
자운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해 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내가 캐려 했던 나물은 자운영이었다. 그건 오래전부터 초근목피로 연명해온 농촌의 비상식량 품목에 드는 나물이었다. 순사에게 잡혀갈 수도 있는 자운영을 캔 것이다. 나는 누나에게 아무에게도 자운영을 캤다는 사실을 이르지 말라고 했고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했을 것이다. 그때 '순사 온다'는 말만 듣지 않았더라면 누나와의 봄나들이, 내 나물 캐기의 봄나들이는 완벽한 해피엔딩이 되었을 것이다.
해방되고 난 한참 뒤의 일이다. 학교에서 한국 역사와 한국 시를 배운 뒤의 이야기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그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가는' 봄 들판은 바로 그날 내가 금지된 자운영을 캐고 두려움에 떨었던 그 들판이었던 것을 알았다.
들판의 잡초와 나물 한 포기까지 빼앗긴 들판은 그 시를 읽고 훨씬 전부터 알았던 게다. 일본 순사의 '사베르' 소리에서 글자도 읽을 줄 모르던 아이가 이미 그 시의 운율을 듣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프랑스 말을 배우다가 그 '사베르'란 것이 실은 긴 칼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사브르'의 우스꽝스러운 일본식 발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브르'란 말에는 갈치라는 다른 뜻도 있었다는 것도 말이다. 근엄한 제복에 갈치를 허리에 매달고 다니는 순사의 모습을 생각하며 혼자서 낄낄거리며 웃는다. 비로소 자운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순간이다.
꼬부랑길 속 소월의 노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부모는 과거다. 내가 훗날 부모가 되면 부모의 과거였던 시간이 내 훗날 미래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옛이야기의 의미다. 수천 년을 이어온 옛이야기. 그때 내 말이 있었고, 내 말이 또다시 수천 년을 이어 아이의 옛이야기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옛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바뀌고, 그 아이의 아이로 또다시 이어진다.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또다시 과거가 되어 미래로 탄생한다. 요즘 잘 쓰는 말로 '오래된 미래'라는 당착어법이 생겨난다.
시인 김소월의 '부모'다. 더 긴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가슴을 저미는 노래며 삶의 실천철학 이리라!
덧붙이며
이어령 선생님의 노래들을 적다 보니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한국인 이야기 '너 어디에서 왔니'에 노래가 많이 실려 있고 대부분의 노래가 동요와 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탄생을 이야기하며 어릴 적 자장가, 옛날 옛적 동요, 한류에 흐름을 만들어 낸 '상어 가족' 등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도 이런 노래만 듣지는 않았을 것이지-분명 문화 예술계의 수장을 역임하신 분이라 한참 더 많은 음악을 들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글에 놓인 노래들은 오히려 동심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굴렁쇠와 메멘토 모리'는 선생님 삶의 큰 축이었던 듯하고 이는 노래들로 살펴보았을 때 재즈나 클래식 팝, 트로트에 중심이 놓여있지는 않은 듯하다.
선생님의 십팔번은 무엇이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리고 저의 소박한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
명예가 중요하지 않다고 떠나는 길에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삶의 진리 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직은 명예를 중시하며 사는 산자들 중에 선생님께 노벨 문학상 주려는 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곳에서 받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 좋은 추억으로 남겨주셔야 하니까요. 우리의 추억이 선생님의 '진정한 명예'일 거라 생각합니다. 관직, 교수직, 논설위원 이런 명예 말고요!
한마디 덧붙이자면 '밥 딜런'이라는 가수도 그 상 받더라고요!
선생님은 그보다 열배 백배나 더 문학적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