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드레스를 입었다. 단정하게, 예쁘게.
겉은 고요했지만, 속은 복잡했다.
그 옷이 오늘의 나를 대신 설명해줄 거라고 믿었다.
말을 아껴야 하는 자리였고, 상처를 숨겨야 하는 자리였으니까.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지하 주차장으로 햇살이 흘러들었다.
회색 콘크리트 위로 번지는 빛이 마치 연극 무대의 조명 같았다.
나는 조용히 무대에서 퇴장하는 배우처럼 발걸음을 내디뎠다.
누군가는 말할 거다.
“그날, 너 퇴출당했지?”
맞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말하고 싶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 걸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말에 기대어 버텼고,
말로 상처받았고, 마지막에는 말없이 밀려났다.
존엄은 소리 없이 거래되었다.
오십만 원이란 이름으로 글로 새겨졌다.
나는 정중히 인사했고, 감정을 꾹 눌러 문자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주세요.”
그 문자는 나의 예의였고, 나의 방어막이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드레스를 벗을 때, 문득 알았다.
내가 무너진 게 아니라 내 말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걸.
그날의 드레스는 격식을 위한 옷이 아니었다.
상처를 감추기 위한 포장도 아니었다.
그건 상처를 안고도 나가겠다는 의지의 갑옷이었다.
나는 예쁘게 하고 나갔다.
그리고 그날, 다시 살아났다.
이 글은 해명도, 복수도 아니다.
그저, 불편했던 존재가 언어를 찾아가는 기록이다.
내 말이 들리기 시작한 그날, 나는 드레스를 입고 조용히 무너졌다.
그리고 그 침묵이 나를 복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