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났다.
“그래도 예쁘게 무너져야지.”
“품위 있게 끝내야지.”
위선 같았다.
무너지는 건 추하다.
정리되지 않는다.
눈물과 분노가 엉키고,
말이 막히고,
소리가 커지고,
때론 침묵이 뼈처럼 무거워진다.
그걸 예쁘다고?
말장난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른 지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예쁘게 무너진다는 건
상처를 안 보이게 감추는 게 아니라,
상처를 더는 숨기지 않고
내가 내 눈으로 보는 일이다.
어설픈 포장지를 벗기고
내가 깨진 자리를
내 손으로 쓸어보는 일이다.
일본의 킨츠기 기법이 그렇다고 한다.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메워
깨지기 전보다 더 귀하게 만든다.
“부서졌지만 더 아름답다”는 선언.
상처를 숨기는 대신
그게 내 역사라는 걸 인정하는 철학.
내가 지난 몇 년간 제일 힘들었던 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무너진 척하지 않는 거였다.
이미 다 깨졌는데
안 깨진 척, 멀쩡한 척,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로는 비명을 참았다.
나는 정치라는 자리에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민원도, 갈등도, 실패도
“잘 관리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했다.
누구에게는
“잘하네”라는 인정을 받았지만
나는 내가 점점 낯설어졌다.
특히 회사에서 쫓겨나듯 나온 그날,
나는 드레스를 입고 나섰다.
품위 있게.
겉으로는 예의 있었지만
내 마음은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그 부서진 마음이
나를 처음으로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 깨졌어.
여기 아팠어.”
그래서 생각한다.
‘예쁘게 무너진다’는 건
무너짐을 부정하지 않는 거라고.
내 금이 간 자리를
내가 먼저 본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어설프게라도 금줄을 그어본다는 것.
심리학에서는
‘트라우마 이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는 개념이 있다.
심각한 상처를 겪은 사람이
더 단단해지고,
더 공감적으로 변하고,
가치관이 재정렬되는 과정이다.
어떤 상처는 없어지지 않지만
그걸 덮는 대신
그 위로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회복탄력성(Resilience) 연구에서는
이걸 “ordinary magic”이라고도 부른다.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연습하면 기를 수 있는 능력.
넘어지되, 일어나되,
그 과정을 자기 언어로 담아내는 힘.
나는 요즘 내 위기를 돌아본다.
첫 감정이 뭐였는지.
두려움? 분노? 수치심?
그 감정들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조금이라도 오래 바라보려고 한다.
왜 그렇게 아팠는지.
왜 거기서 무너졌는지.
왜 그렇게 끝까지 붙들었는지.
저신다 아던이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직후
이슬람 공동체 앞에서
흑색 히잡을 쓰고 눈물을 보였다.
국가원수가 공식석상에서
울음을 참지 않았다.
그 눈물이
국민의 분노와 슬픔을
한 번이라도 같이 품어주었다.
그게 ‘품위 있는 리더십’이었다.
삼성전자도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폭발 사태 때
신속하게 리콜을 결정하고
투명하게 사과했다.
주가가 떨어지고 욕을 먹었지만
그 투명성이 결국 브랜드를 살렸다.
숨기지 않고 드러낸 상처가
신뢰를 복원했다.
나는 정치인이자 엄마였다.
내가 맡은 자리는 늘 ‘관리’였다.
민원, 일정, 아이의 기분.
감정의 파국이 나면 안 됐다.
하지만 아이가 내게 알려준 건
무너짐을 품는 연습이었다.
울음이 터지는 순간을
함께 견디는 일.
그래서 이제야
‘예쁘게 무너진다’는 말이
조금은 다르게 들린다.
“예쁘게”라는 건
숨기지 않고 인정하는 것.
“무너진다”는 건
다시 쌓을 수 있다는 것.
금이 간 자리 위에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
오늘도 나는 내 마음을 살핀다.
무너진 금을 매끄럽게 덮는 대신
그 결을 따라가 본다.
때로는 금이 더 아름답다.
나를 증명하는 선이니까.
“당신은 언제 무너졌나요?”
“그때 무엇을 숨기고 싶었나요?”
“그리고 지금, 거기에 어떤 금줄을 그리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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