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그렇게 담담하세요?”
정치를 할 때, 사람들이 내게 자주 던지던 질문이었다.
나는 사실 그 질문이 늘 낯설었다.
왜냐하면 나는 담담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누구보다 잘 무너지고, 부서지고, 두려워했던 사람이다.
나는 시의원이었다.
내가 살던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고, 사람들은 내게 표를 줬다.
그런데 가장 두려웠던 건 표를 잃는 게 아니었다.
내가 내 말에 갇혀서 무너지는 거였다.
나는 무관사주다.
사주팔자로 보면, 관(官)이 약하다.
관이 없다는 건, 나를 제어해주는 기둥이 약하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명령이나 규칙으로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건 말이 멋있지, 실제로는 두려움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결정을 못하고, 흔들리고, 다른 사람의 기대를 너무 신경 쓰다가 결국 내 기준이 흔들려 버리는 거다.
시의원으로 일하면서 나는 많이 무너졌다.
나를 지켜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의 비난, 언론의 공격,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의 실망.
나는 밤마다 내 표정을 연습했다.
울지 않도록, 떨리지 않도록,
마치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그러면서 깨달았다.
말을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말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돼야 했다.
말로 화려하게 나를 포장하는 순간,
그 포장지가 찢어지면 나는 너무 쉽게 무너졌다.
나는 말을 줄였다.
그 대신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가만히 있는데도 존재감이 있죠?”
사실 존재감은 말로 만드는 게 아니다.
존재감은 태도에서 나온다.
그리고 태도는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정치를 그만두고 한동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부끄러움, 분노, 후회, 다 내 몫이었다.
그걸 그대로 느꼈다.
어떤 날은 다 포기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다시 나가서 말하고 싶었다.
그 사이에서 배운 건, 결국 나를 붙잡아주는 건 내 말이 아니라 내 기준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렇게 제안한다.
말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세 가지 태도를 연습한다.
첫째, 감정을 인정하는 것.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억누르지 않되, 남에게 던지지 않기.
내 감정을 인정하면, 남의 말이 내 심장을 찌르지 못한다.
둘째, 말을 줄이는 것.
설명하지 않는 연습.
나는 정치인으로서, 엄마로서, 늘 설명하고 설득했다.
하지만 가장 큰 위기에서 배운 건, 설명보다 태도가 더 강력하다는 거였다.
침묵은 무기다.
설명은 때로 나를 파는 일이다.
셋째, 내 기준을 세우는 것.
남들이 뭐라 하든 “이건 나는 안 한다”는 기준.
관이 약한 사주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
그래서 더더욱 기준이 필요하다.
내 기준이 없으면,
내가 남의 말에 휘둘릴 뿐 아니라
내 말로 나를 배신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지금도 화가 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두려우면 말이 길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내가 무너지지 않으려고 강의를 하는 게 아니다.
무너졌던 내 경험으로 누군가가 조금 덜 무너졌으면 해서 이 말을 한다.
“말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건 내가 지금도 연습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그리고 당신도 할 수 있는 모습이다.
당신이 오늘 하루도 당신을 지킬 수 있기를.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 이렇게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숫자로 알았습니다.
여전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