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왜 ‘제대로 화내는 법’을 가르쳐야 하나요

by 스윗퍼시먼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날 저는 지하철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 나오는 그 순간, 누군가가 제 엉덩이를 슬쩍 만졌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먼저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손이 올라왔고, 저는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습니다.

“뭐 하시는 거예요?”

그의 눈은 처음엔 놀람이었고, 나는 곧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훨씬 먼저 몸과 마음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마치 필름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하철 조명이 깜빡였고, 배경 소음이 멀어지고, 제 안에서 ‘필름 영화’처럼 느리고 선명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방금 나를 만졌어.”
“지금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면 이건 사라질 거야.”
“하지만 이건 없어져서는 안 돼.”

그리고 저는 말했습니다.

“지금 뭐 하신 거냐고요?”


멱살을 잡고 난 뒤,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사람들은 못 들은 척하는 것 같았고, 저는 제가 경찰을 불렀습니다.

먼저 역무원이 도착했고 가해자와 저는 분리될 수 있었습니다.

경찰이 도착하고, 상황 설명을 했습니다.
가해자는 그때부터 변명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는 손이 떨리고, 심장이 요동쳤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가 ‘예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저는 피해자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습니다.

경찰이 도와줬지만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지하철 CCTV 확인 요청에 수락하고 사건을 진술했고 과학수사대도 불러 DNA 체취도 수락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피해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오롯이 저의 몫이었습니다.

탄원서에 담았던 말들, 이건 단순한 ‘성추행’이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인 접촉이었고, 그 사람은 한두 번의 솜씨가 아닌 행동이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진짜 용기가 대단합니다?”

저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지금 아무 말도 안 하면, 이 일이 또 누군가에게 일어날 테니까요.”

그 말을 탄원서에 썼습니다.
그 사람이 엄중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고,
피해자의 고통이 사소하게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런데 이상한 일은 계속됩니다

그 후 저는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불안이 몰려왔습니다.
멀쩡히 있던 공간에서도, 누군가 제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깜짝 놀라거나 심장이 쿵 내려앉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제도와 감정은 따로 움직였습니다.


가해자는 변호사를 선임했고, 진술을 조율하며 실수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 하루도 그날의 실수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만지고 간 손은 사라졌지만, 그날 이후의 감정은 제 안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묻고 싶습니다

피해자는 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화내는 법까지 익혀야 하나요?

왜 가해자는 실수라고 말하고, 피해자는 진심을 증명해야 하나요?

왜 그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말로 사라지고, 나는 “그럴 의도였다”는 걸 증명해야 하나요?


피해자는 정의를 바라지 않습니다. ‘회복’을 바랍니다

이 사건이 끝나고도 저는 여전히 상담을 권유받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사람 많은 곳에서 어깨를 움츠리게 되었고, 모르는 사람의 시선에도 경계심이 생겼습니다.

저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날, 정말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건 단순한 사연이 아닙니다.

이건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소한 범죄와 침해에 익숙해져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법과 제도가, 그 ‘사소한’을 심각한 침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끝으로 피해자는 무너진 게 아닙니다.

그저, 불안해진 일상 위에 다시 올라서려고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

그 자리에 저도 서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언젠가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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