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이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피해자로서, 증인으로서,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나는 지금도 묻고 있습니다.
정의는 왜 이렇게 느리고,
왜 이렇게 오랫동안 피해자에게 증명을 요구하는가.
사건은 지하철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평범한 하루를 마무리하던 중, 낯선 손에 의해 신체가 침해당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움켜쥐었고, 흔들렸고, 소리쳤습니다.
“도와주세요!”
그 외침은 허공을 갈랐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나를 외면했습니다.
나는 경찰을 불렀고, 조사를 받았고, 과학수사대를 요청했습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용기 있게 대처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내 삶은 달라졌습니다.
손끝의 감각, 엉덩이에 남은 촉각,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밤마다 찾아오는 악몽까지.
나는 재판에도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증명해야 했습니다.
내가 느낀 불쾌감, 공포, 수치심이 실제였음을.
가해자의 변명과 거짓 항변 앞에,
나는 “그것이 우연이 아님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증인은 불출석했고, 검사는 세 번 바뀌었습니다.
공판은 몇 차례나 연기되었고,
그 사이 나는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이 사건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래도 용기 낸 건 대단해.”
“정의가 반드시 실현될 거야.”
하지만 그 정의는, 왜 이토록 멀기만 한 걸까요?
나는 예전 시의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직함은, 오히려 나를 무너뜨리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2016년, 대리운전 요금 시비로 경찰에 신고했던 일이 있었지요.
언론은 “3000원 때문에 갑질한 시의원”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협박 같은 분위기에 겁이 나, 112를 누른 피해자였습니다.
그때도 나는 믿어달라고 말했지만,
믿지 않았던 그 눈빛과 목소리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더욱 절실했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피해자다움이란 무슨 뜻일까요.
여성도 사회적 권한을 가졌다고 해서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지금 나는 부산성폭력상담소의 도움으로 다시 균형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정신과 치료, 이명 치료, 그리고 진심어린 위로와 이어진 상담 권유
그 모든 것이 나를 다시 사람답게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공판은 8월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지나야 비로소 ‘판결’이라는 것이 내려질 겁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브런치에 남기고자 합니다.
기록하고, 말하고, 증언하고 싶습니다.
정의는 법정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행동 속에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말할 것입니다.
나는 끝까지 서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이 시스템의 문제를 밝히기 위해.
그리고 나와 같은 또 다른 피해자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기 위해.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어쩌면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부디 기억해 주세요.
우리는 끝까지 걸어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정의는 때로 더디게 오지만,
우리는 그 정의보다 더 멀리, 더 오래 버틸 수 있으니까요.
#지하철성추행 #강제추행 #정의는어디쯤있습니까 #당신은혼자가아니야 #톡닥톡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