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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힝맨 Nov 15. 2023

만 37세의 자화상 - 커리어

왜 이리 젊은 나이에 뒤틀린 인간이 되어버린걸까

이제는 만나이가 적용되는 37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지니

자화상 하나를 남길 때다.


내 자아는 아마도 중2에 완성되었던거 같다.

그래서 아직도 중2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여전히 세상의 모든 억까는 나만 겪는거 같고,

세상에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아마도 지독한 오만일 게다. 사실 정말로 내 탓인 일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중2병 답게, 나는 오만했고, 냉소적이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날의 나는 더 오만하고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극적이고,

항상 무언가에 미쳐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었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꽤나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실패를 겪었다.

가정환경, 대입, 학업, 일, 건강... 무엇 하나 나를 도와주는 것은 없었다.

냉소적인 성격, 자신의 재능에 대한 오만이 자초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실패들 덕분에 조금 유한 인간이 되었던 듯 싶다.

그래도 여기까지만 해도, 그렇게 내향형 인간은 아니었지.


나는 아마 스물 셋 쯤에 삼포세대가 된거 같다.

연예, 결혼, 육아...는 커녕 사랑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했다.

이 삶을 결코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의 아이가 나를 닮는다면, 내가 느낀 절망과 좌절 또한 닮겠지.

그 때부터 한 가지 꿈을 꾸었다.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없기를.


그리하여 창업이라 불리는 것을 했다.

사실, 창업이라고 말하긴 민망한 것이었으나, 사람들은 창업이라 불렀다.

스물 다섯의 나이에, 나같은 아이가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랬다.

최소한 꿈을 가지면 노력해볼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주자.

우리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자.


우리팀은 사회적기업의 탈을 쓰려고 했고, 소셜벤처가 되겠다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애송이 학생들의 장난 놀음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누구하나 프로답지 못했다.

나이 어렸던 우리에게 프로페셔널은 바란 것은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꿈의 크기가 너무 벅차 작은 프로젝트를 했지만, 무엇하나 성공해보지 못했다.

프로다움이 없는 장난놀음이 성공할 만큼 세상은 녹록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장난 놀음에 지쳐 팀을 깼다.

같이한 팀원들은 20대에 얻기 힘든 경험과 수상 경력을 가졌기에, 그리 큰 손해라 여기지 않는듯 싶다.

그 시절이 그립다고 말하는 옛 팀원들을 보면, 배알이 꼴려 참을 수가 없다.

왜, 왜 너희는 이 실패에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가!


하긴 답은 간단하다. 꿈은 나만 꾸고 있었으니까.

나는 결코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꿈을 꾸고 있었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겠지.

내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닌, 이룰 수 없는 목표지만 단지 노력하는 현실이었다.

나의 길, 내 생각은 그들에겐 꿈, 그저 4차원의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었겠지.

지금도 내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고 착각하니까.

그저, 그저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아무도 하지 않아서, 입으로만 떠들어선 안되니까, 나라도 노력했을 뿐이다.

단언컨데, 이 부분에서만은 단 한순간도 오만한 적이 없다.

모든 프로젝트가 성공했다하더라도, 세상은 눈꼽만치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10년쯤을 산거 같다.

팀을 깨고 스타트업을 다녀보기도 하고, 매출 중심의 작은 중소기업도 다녀보고,

대기업에 가까운 중견기업까지도 겪어 보았다.

결론적으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생각도 바꿔놓지 못하더라.

결과적으로, 좋은 서비스 하나 못 만들더라.


그리하여, 침잠하여 다시 또 반성하는 것이다.

왜 나는 또 실패했는가.


아마도 지랄맞게 높게 쌓아놓은 벽 탓이겠지.

굳이 따지자면 - 작은 생체기에 불과한 상처일 뿐일텐데

또 다른 상처를 두려워하여, 사람 사이에 쌓아높은 높은 벽 탓이겠지.

속시원히 사람들과, 팀원들과 이야기 해본적이 언제였더라.


입버릇처럼 말하는 신뢰 자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자산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누구의 신뢰 자산이 되어줬더라?

내가 떠날 때면 배신처럼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

떠나보내는 마음이 어떤지 알면서도 나는 남겨지는 사람의 마음따윈 고려하지 않았지.

애써 나의 존재를 낮추어 별거 아닌 사람처럼 굴었지.

그러면서 어떻게 신뢰 자산을 쌓을 수 있을까.


수 많은 실패 속에 뒤틀린 인간이 되어버렸다.

극단적인 내향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선의와 신뢰, 그리고 노력이란 말들은 멀겋게 그려진 수채화 같다.

작은 물얼룩에도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는 멀건 수채화.

긍정을 강요하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곤 하지만,

나는 너무도 뒤틀린 인간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모든 것에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며, 배알이 꼴린다.

젊다면 젊은 만 37세에 왜 이렇게도 뒤틀린 인간이 되었을까.


재능이 있다면, 세상을 위해 쓸 생각을 해야한다는 작은 신념...

더 지켜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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