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 거절한다! 그럼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날게요

호의의 두 번째 거절

by 스토리텔러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물었다.


"이전 사랑은 어땠어요?"


여자는 남자의 물음이 비난처럼 들렸다.

이전 사랑이 어땠길래, 그리도 철벽을 치냐는 비난.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이해했다.

저 남자는 비난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나를 알고 싶은 거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여자는, 성의를 다해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조용히 앞에 있는 차 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꽤 긴 텀이었건만, 남자는 말이 없다.

여자는 라벤더 차를 컵에 따랐다.

코끝을 간질이는 향기가 좋다.

그런데 여자는, 멈추지 않았다.

라벤더 차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넘쳤다.

테이블 위로 흐르는 차를 보면서도 남자는 여자의 말을 기다렸다.


“그 사람은요, 항상 뭔가를 줬죠. 넘치게."


테이블 위로 흐른 라벤더 차의 향기는 코끝을 날카롭게 찌른다.


"그거, 자랑이죠?"


남자는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여자에게 끊임없는 대시, 플러팅을 시도했건만,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노력하진 않았던 거 같다.

그럼에도 항상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었다. 와주었다.


"자랑으로 들렸어요?"


그럴 리가. 당신이 그런 사람이었다면,

지금 우리의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잘 보이고 싶으면 넘치게 달라는 힌트인 줄 알았는데요?

언제나 주잖아요 힌트, 넘치게"


여자는 즐거웠지만,

거절처럼 단호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해달라고 한 적 없어요."


여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

자신도 돌아보는 것이겠지.

남자는 여자의 단호한 말에도 단절을 느끼진 못했다.

지금도 주고 있다. 힌트. 넘치게.


"해주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당신의 노력처럼 부담스러웠죠."


남자는 웃었다. 너무나 당당하게.

이건 남자가 정말 자신이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짓궂은 줄 알면서도 물었다.

단호가 단절은 아니니까.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정말?"


"... 이런 게 부담스럽다는 거예요."


여자는 사실 남자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가 편했다. 선을 넘지 않아서.

선은 넘지 않으면서, 선을 넘어보자고 약만 올린다.

받아들이고, 선언만 하면 된다고 간질인다.

그 감각이, 싫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 남자는 꽤나 여자를 잘 이해하고 있다.

여자는 변명처럼 말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서 이것도 주고 저것도 주고.

무리는 얼마나 하는지, 자신을 돌보지 않았어요.

마치 부모님 같은 헌신이었달까."


여자는 지난 사랑을 넘어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런 거 있잖아요. 부모님이 해주는 건 고맙지만,

정말 필요 없는데 무리하는 거.

감사해야 하는지 알지만, 부담스러운 거.

무슨 말인지 알죠?"


"그렇죠. 부모님이 날 위해서 희생하는 건 알겠는데,

그게 정말 나한테 필요한 일이 아닐 경우가 꽤 많죠."


"그런 부채감을 사랑하는 남자한테 느낀다는 거, 별로 좋지 않았어요.

부채감도 포장인 거 같아요. 그냥, 싫었어요.

아 이 사람은 나를 1 미리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자기가 좋으면 그뿐일 뿐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못 참았던 거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던 거 같아요.

멋진 남자고, 나만 사랑하고, 나를 위해 헌신했지만...

나를 알아주지 않았어요."


여자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느껴졌어요.

하지만 그 마음이 나를 향한 거라기보단,

자기감정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게 정말 날 위한 사랑인지,

그냥 자기를 위한 집착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여자는 테이블로 흐르는 라벤더 차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엔 고마웠죠. 근데 시간이 갈수록 무서웠어요.

그 사람은 나를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난 점점 '이게 사랑이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를 위한 거라면, 왜 이렇게 숨이 막히는 걸까요?"


코 끝을 찌르는 라벤더 향에 숨이 막힐 거 같다.


남자는 생각했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은 보통 사랑이 끝나서가 아니었다.

사랑은 남았지만, 지속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고,

그 무언가를 참을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게 누군가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남자는 사랑은 용인이라고 말했었다.


"그 남자도 못 참았던 거죠.

자기가 해주고 싶은 마음을."


남자는 인정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정으로 끝내지 않았다.


"이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뭘 해야 할지... 그런 걸 천천히 알아가려 한 게 아니라,

마음만 급해서 무언가를 해주려고만 했었던 거군요"


남자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뭔가를 해주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네. 맞아요. 원망할 수도 없죠.

그리고 생각해 보면,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어요.

모르는 게 너무나 당연하죠.

그래서 지금 내게 사랑은 너무 피곤해요."


그래서 여자는 서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버들강아지와 민들레의 마음을 알 수 없듯,

서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피곤했다.


"맞아요. 사내놈들은 다 똑같죠.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순정을 바쳤는데 여자는 떠난다고 말해요."


일반론, 정론. 사내놈들은 다 똑같다.

그리고 사실은 변하지도 않는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동의하며 농담조로 말했다.


"어디 가서 욕먹기 딱 좋은 이야기네요.

남자는 어떠니 여자는 어떠니...

그리고 결국..."


여자도 농담조로 받았다.

그리고 한껏 부풀려 말을 이었다.


"당신도 남자잖아요."


여자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다.

보편적인 거절의 말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하지만 정말 자신의 거절은 보편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한껏 부풀렸지만 사실은 작은 농담.

그동안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같이 보낸 시간이

여자에게 확신을 줬다.

이 정도로 남자가 상처받지는 않을 거라는.


"..."


잠깐의 텀.

여자는 남자가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이건 논리적으로 반박의 여지가 없으니까.

상처의 침묵이라기보단, 또 장난거릴 생각하는 거겠지.


"그럼요, 암요. 저도 남자죠."


항상 유쾌한 것 같은 남자지만,

'저도 남자죠'라는 말은 꽤나 어둡고 자조적이었다.

여자는 생각보다 어둡고 자조적인 남자의 기색에, 조금 놀랐다.

이 남자도, 그런 적이 있었나?


남자는 여자의 놀란 기색을 알아챘다.

지금은, 자조에 빠져서는 안 됐다.

남자는 자조에서 빠져나와, 여자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걸 그대로 긍정해 버리면,

여자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왜 여자를 구해야 하는지 이유라면,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니까.


남자는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웃었다.

그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남자라서 거절을 하신다?

그래서 여자라도 만나겠다는 거예요?"


여자는 안도하면서도,

너무 쉽게 빠져나오는 남자가, 얄밉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니라면,

여자를 만나겠다는 건 아니니까, 최우선 검토 대상자는 되려나?"


여자는 기가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남자라서 안된다면서요?

흑, 남자라서 거절당했어.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날래"


여자는 어이없어하면서도 이 대화가 즐거웠다.

마음이 가벼웠다.

코 끝을 찌르는 라벤더 향을 잊어버릴 만큼.

그래서일까. 보편적 거절이지,

당신에게만 하는 거절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도 그랬다. 최우선 '개별' 검토 대상자다.


"사랑이란 용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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