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의 두 번째 표현
"사랑받고 자라셨나 봐요."
여자의 말은 갑작스러웠지만, 남자는 이해했다.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지만, 부담스러웠다는 이야길 했었지.
이 여자, 거절하면서도 꽤나 사랑이라는 주제에 집착한다.
"네, 많이 사랑받았죠, 넘치게"
여자의 표현을 기억한다는 듯, 장난스럽게 넘치게라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제 남자의 방식을 이해했다.
장난스러움 넘어 이상한 진지함이 있다.
말장난으로 넘치게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전에 이야기했던 넘치는 헌신과 희생을 의미했을 것이다.
"저는 잘못된 사람인 걸까요?
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는데...
왜 감사함만으로 끝내지 못했을까요."
남자는 여자의 피로를 이해했다.
과거의 감정에 묻히지 않으면서,
여자를 도와주고 싶었다.
"혹시 사랑의 삼요소라고 들어봤어요?"
"사랑의 삼요소? 그게 뭐예요?"
"심리학에서 사랑을 구성하는데 3가지가 있다고 해요.
열정, 친밀감, 헌신.
셋 중에 하나가 빠지면 뭔가 부족한 사랑이 되고,
셋다 갖추면 성숙한 사랑이 된다고 해요."
"어머? 그런 게 있었어요? 음... 그런데, 부모님의 사랑은 열정, 친밀감, 헌신.... 다 있는 거 같은데요?"
"그래서 저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해요. 그리고 이게 나쁜 남자를 설명하기 좋아요."
"그래서 그 한 가지는 뭔데요?"
"배려"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부모님도, 그 남자도, 나도 배려가 부족했을까.
"지좋을 대로 사랑하는 남자. 하지만 헌신과 열정이 있어서 포기하기 어려운 남자.
여자들이 잘 속는 남자죠. 하지만 이 사람들은 배려가 없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사랑해 버리곤, 여자가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요."
"지나치게 잘 아는 거 같은데요?"
"나쁜 남자 놈들과 경쟁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죠."
당신은 나쁜 남자를 만난 겁니다라고 남자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남자가 말하는 배려일까.
"사실 사랑이란 말이 너무 이상화된 거 같아요.
사랑은 그냥 아낌이라서, 이성 간에 사랑만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의 사랑, 형제의 사랑, 친구, 동료까지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아끼고, 배려하면 그게 사랑이죠. 사랑이 뭐 별 건가"
여자는 말을 잃었다. 여자에게 사랑은 너무 이상적이었다.
사랑하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물론 그 배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만.
사랑한다면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꽤나 강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랑은 이상화시키면서 정작 배려는 부족한 게 아닐까 싶어요.
남들에게 보내는 작은 배려야 말로 진짜 사랑인 거 같은데,
사랑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너무 상대를 해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여자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꽤나 충격이었다.
나도 이해해라, 알라고 말하면서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구나.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도 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구나. 변할 수 있는 시간도, 여유도 주지 않았구나.
여자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남자는 알았다.
여자는 생각보다 연약한 사람이라는 걸.
연약한 사람이기에 말도 안 되는 위선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겠지.
남자는 여자를 질책할 생각이 없었다.
저 연약함과 반성을 모두 사랑했으니까.
질책으로 느낄 필요도, 반성으로 바뀔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정도로 충분했다.
사랑스러운 그녀는 일 미리도 변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평소처럼 쉰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 할래요, 여자친구 할래요?"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여자는 당황했다.
이 남자의 농담에 익숙해진 거 같았는데.
"당신은 나를 꽤 배려해주고 있죠.
엄마한테도 못 받았던 배려를 받고 있는 거 같아요."
"...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남자는 절반쯤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짓궂은 농담 해도 받아준다는 거, 꽤나 배려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 이걸 여기서 이렇게 치고 들어온다고?
하지만 이제 받아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그럼 엄마 할게요. 해보세요, 엄마~"
"..."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오히려 남자가 당황했다.
"왜 그래요? 빨리 해보세요 엄마~ 엄. 마!"
하지만 저 남자라면 진짜 엄마라고 할지도 모른다.
늦기 전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에고, 엄마 하면 여자친구는 못해주겠네~"
남자는 짧게 한숨을 쉬며 답했다.
"미안해요. 엄마 해주는 건 거절할게요."
오늘은 남자가 거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