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 호의는 언제 사랑이 되는가
"사랑이라는 게 뭘까."
또 하나의 사랑을 포기한 친구가 말했다.
남자는 얼마 전 여자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열정, 헌신, 친밀감... 그리고 배려랄까."
친구가 웃는다. 기대한 답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언제나처럼 남자의 말이 책에서 나온 문장 같았는지도.
"또 어디서 주워들었구만. 이럴 땐 이렇게 말해야지.
사랑 잊을 땐 말야, 새로운 사랑으로 잊는 거야!
여자 소개해줄까? 소개팅 시켜줄까?"
그렇다. 그게 사내들의 대화 방식이었다.
사랑의 아픔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건, 쑥스러운 일이다.
"나는 뭐가 부족했을까? 이번엔 나름대로 꽤 노력했는데."
남자는 생각했다.
이 친구는 사교성도 있고, 조건도 나쁘지 않다.
연애 경험도 많다. 다만 오래가지 못했다.
남자는 친구의 연애가 약간 일방적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노력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생각, 해본 적 있어?"
친구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노력에도 방향이 있어? 어떤 방향 말하는 거야?"
남자는 대답 대신, 친구가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남자의 배려는 여자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전에 말한 것처럼,
남자는 사랑이 별거 아니라 생각했고,
이 친구 또한 사랑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친구가 사소하게 했던 이야기들을 기억했다.
"예전에 말했잖아.
선물하려고 일 무리하게 늘렸다가,
연락이 뜸해졌다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진짜 한 달 넘게 바빴어.
선물 줄 땐 꽤 기대했지. 근데..."
말이 끊긴다.
아마 상처였을 거다.
"반응이 별로였다고 했지?"
친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물이,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했던 걸까?"
남자의 어조는 단호하지 않았다. 그저 조심스러웠다.
"선물 준비하느라, 한 달 가까이 연락도 줄었고, 같이 보낸 시간도 줄었잖아.
그게 오히려 불안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는 말이 없다. 남자는 이어서 말했다.
"그 선물, 정말 같이 보낸 시간만큼의 의미가 있었을까?"
잠시의 정적.
남자는 술잔을 들어 입을 축이고, 안주를 한 점 집어먹고 말했다.
"나는 사실 잘 몰라.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너겠지.
근데 가끔 그런 생각은 해.
사람은 가끔, 사랑을 자기가 증명하려 해.
그 사랑을 증명해 주는 건 상대인데, 노력으로, 물건으로 대신하려는 거지."
남자는 친구의 잔에 술을 따라주려다 멈췄다.
친구는 손을 살짝 들어 거절했다.
남자는 자기 잔만 채우며 말을 이었다.
"나도 그랬거든. 좋아하는 만큼 뭔가 해야 한다고 믿었어.
그러다 보면, 내가 좋자고 한 걸 ‘당연히 고마워해야 하는’ 걸로 착각하곤 했지."
술도 비슷하다.
잔을 채우는 건 매너고, 배려다.
하지만 원치 않는 잔을 억지로 채우면,
그건 배려가 아닌 강요.
"그게 노력이라면, 노력일 수 있겠지만 말야."
친구는 여전히 말이 없다.
너무 아픈 말이었을 수도 있다.
남자는 그저, 조용히 자신의 잔을 한 번 더 비웠다.
사랑의 쓴맛을 나누어 마셔주려는 듯.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 마음뿐이라는 걸, 남자는 잘 알았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술도 다 마셨고, 이제 그만 들어가자."
남자는 계산을 마치고 친구를 택시에 태워 보냈다.
친구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인사도 어영부영이었다.
홀로 남은 거리.
네온사인이 어지럽게 반짝이는 밤.
남자는 생각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는데,
사람 마음은 왜 예전 시골마을보다 더 알기 어려울까.
남자는 슬픈 도시를 애도했다.
그리곤, 여자를 떠올리는 것이다.
지금 여자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다.
이 씁쓸함은 혼자 넘겨야겠지.
술에 취해 전화를 걸고 싶지만, 그건 배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여자와 지난 대화를 떠올렸다.
"... 그러고 보니, 저 녀석도 나쁜 남잔가?"
배려 없는 헌신이라면,
저 녀석도 나쁜 남자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