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의 세 번째 거절
"사랑의 삼요소에 배려를 넣었잖아요?"
돌연한 질문이라는 걸 알듯,
여자는 잠깐 텀을 두고 말을 이었다.
"그럼 배려는... 어떻게 하는 거에요?"
남자는 놀라지 않았다.
단지,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요즘 주말엔 뭐해요?"
"...네?"
요즘 여자는 주말에 남자를 자주 만났다.
남자의 고백에 가까운 호의를 매번 거절하지만,
잠깐 보자는 권유는 거부하기 어려웠다.
"배려를 어떻게 하냐고 했죠?"
남자는 잠깐 머뭇거렸다.
이건 평소에 장난스럽게 돌려하던 고백은 아니었다.
단지 예시가 조금 미끄러졌을 뿐이다.
여자의 당황을 남자는 재빨리 수습했다.
"제가 하는 배려는요.
요즘 뭘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
그걸 묻고, 듣고, 기억하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남자는 자주 물었다. 요즘 어때요, 뭐하고 지내요.
그리고 며칠 뒤 혹은 꽤 시간이 지나서도 꼭 다시 물었다.
여자는 그 되물음에 간혹 위로 받았다.
이 사람이 나를 신경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해요.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취미가 뭔지 같은 걸 묻고,
그게 바뀌면, 그 바뀐 걸 또 기억해요."
남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하다못해 이 커피조차 그래요.
늘 시럽을 넣던 사람이 시럽을 빼기 시작하고,
아이스만 마시던 사람이 뜨거운 걸 찾게 되는 변화 같은 거요."
문뜩 떠올랐다.
언젠가 그는, 따뜻한 거 마시겠냐고 물었었다.
날씨가 꽤 쌀쌀했던 날이었다.
여자는 그 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 후로 남자는 쌀쌀한 날에만
"따뜻한? 아이스?" 하고 물었다.
"작은 변화들을, 그 차이들을 알게되면요,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게되요.
그래서 다시 묻는 거예요.
그때 그 일은 어떻게 되었냐고,
예전엔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신경써서 하는 일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냥 하는 물음이라기엔,
꽤나 정확하게 기억할 뿐만 아니라
가끔은 내가 그런 이야기도 했던가하고 놀랄 때가 있고,
앞뒤 이야기를 정확하게 맞추곤 했다.
"흠... 섬세한 건 알겠는데,
그게 왜 배려에요? 그냥 관심표현 아니에요?"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거죠.
그냥 그걸 기억하는게 아니에요.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면—
그 사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거 같아요.
그럼 서로 불편한 헌신과 희생은 안하지 않겠어요?"
여자는 남자들이 문을 열어주는 걸 싫어했다.
예의라고, 매너라고, 의무처럼 앞장서서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문을 열지 않았다.
굳이 먼저 나서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먼저 닿은 사람이 문을 열었다.
말한 적 없지만, 알고 있었다.
여자는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자를 거절한다고 말했다.
이 사람의 이해는... 완전한 이해가 아니구나.
변화 속에서, 또 그 다음을 바라보는 거구나.
기억을 그대로 두는게 아니라, 변화를 보는구나.
생각에 빠진 여자를 바라보다가,
남자는 지나기는 말처럼 가볍게 물었다.
"그런데, 생일은 언제에요?"
남자는 안다.
여자는 화려한 생일 선물과 이벤트를 바라지 않는다는걸.
여자도 안다.
소소하지만 마음에 닿는 무언가를 주겠지.
여자는 그 소박한 마음을 한껏 이용하기로 한다.
"요즘 생일은 오늘이에요.
일단 오늘 선물 주고, 다음에 물어보는 날도 선물주세요"
남자는 여자의 장난기를 눈치챘다.
"선물 줄거라곤 안했는데요?
바라는게 많아진거면 좋겠지만."
"사실 선물 줄까봐 안알려 주는거에요."
그렇지. 사실 그게 부담스러운거겠지.
남자는 알면서도 괜히 삐죽거려본다.
"...생일 알려주는게 그렇게 싫어요?"
"거절에 익숙해진거 아니었어요?"
"거절에는 익숙해지지만 상처는 남아요."
"그럼 그만하시던가요~"
남자는 삐죽거렸고, 여자는 또 거절했다.
하지만 둘은 분명히,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