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의 네 번째 거절
"...진심과 낭만이라는 말이...
무서워요."
여자의 갑작스러운 말에
남자는 잠시 고민했다.
갑작스러운 말이 불편해서는 아니었다.
진지하게 받아야 할까를 고민했다.
남자가 고민하는 사이, 여자는 말을 이었다.
"예쁘고 따뜻한 말인데,
그 말이 오히려 마음을 조이더라고요."
남자는 평소의 장난기를 잠시 거두었다.
"넘치는 헌신과 희생이 아니면 괜찮은거 아니에요?"
"넘치는 사랑이 피곤하다고 생각했는데,
넘치는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던거 같아요.
사랑은... 일방일 수 없잖아요.
제가 주기 바쁜 혼자 하는 사랑도
증명하려는 사람이 주는 혼자 받는 사랑도 저는 싫어요."
남자는 여자가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죠. 받은만큼 돌려줘야하는.
그래서 사랑스러운 거겠죠.
"원하지 않은 거라면, 받는 입장에서도 꽤 힘들어요.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해줘야만 할 것 같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되돌려줘야 할 것 같고.
그런데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면, 그게 싫어지는거죠."
여자는 사실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남자가 보이는 작은 호의들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에겐 사랑이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고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게 사랑일까 싶어요.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받아주는 것도,
원하는걸 주더라도 그냥 받아주기만 하는 것도...
그게 사랑은 아니잖아요?"
여자는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변명처럼 말했다.
"그래서 전 당신을 비롯한 누구의 호의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요"
남자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을 용인이라고 말할 때, 여자는 동의할 수 없었구나.
여자는 그냥 받아주는게, 견딜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 용인의 범위를 벗어난게 아니었을까.
이미 견딜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남자는 오히려 여자의 말에 안도했다.
이제야 고백을 진심으로 고려해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했으므로...
"자의식 과잉 아니에요?"
평소같이 농담을 했다.
"네?"
"지난번 거절 이후에 아직 고백 안했는데요."
"그거야 너무 자주 하니까..."
"오, 제 고백은 거절해도 계속 유효한건가요?
오늘 고백하면 오늘 거절, 내일 거절, 모레도 거절...
1고백에 거절은 계속 늘어나는, 매일 차이는 삶이라니.
흑. 너무 슬픈 삶이야. 생각보다 잔인하시네."
맞다. 저번에 거절 이후,
남자는 은연중에라도 고백을 하지 않았다.
오늘 여자는 앞서간 것이 맞다.
사실, 매번 이어지는 고백에 그게 중요할리가 없건만,
여자는 부끄러웠다. 남자의 고백을 당연시 했으므로.
남자 기회를 잡고 더 짖굳게 말했다.
"0고백 1거절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고백도 안 했는데 거절부터 당하는...
근데 1고백 2거절은 가능한건가보네요?
정말 너무하네!
1고백에 1거절이 공정거래, 등가교환 같은데요?"
"아... 그... 미안해요..."
"생각해보니까 매일 매일 거절하게 만들어서
마음의 빚을 만드는 것도 괜찮은거 같기도하고?"
남자는 알았다.
여자는 차가운척, 쿨하게 거절하지만
마음 편히 거절하는 사람은 아니라는걸.
잠깐 보자는 말조차 쉽게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작은 동아줄을 내려주듯 말했다.
"매일 매일 거절하는 사람 안만들려면
빨리 다음 고백해드려야겠네.
어때요? 다음 고백이 기다려지지 않아요?"
"..."
여자는 민망해서 곤란하기도 했지만,
눈치없이 실룩거리는 입꼬리도 곤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