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 거 연애미수 합시다. 치사하게

호의의 네 번째 표현

by 스토리텔러

"다음 고백을 해줘야 지난 거절에 1고백 1거절이 되죠?"


여자는 지난 민망함을 떠올렸다.

이 짓궂은 남자. 오늘은 또 무슨 말로 놀리려는 걸까?

하지만 그의 장난이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운 건, 그런 장난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백을 기다리는 입장으로 말해봐요.

우리 관계를 뭐라고 해야 해요?"


사실, 여자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였다.

남자가 부르면 나가고,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남이라면 하지 않을 깊은 내용도 있었다.

우리는 이 관계를 뭐라고 이름 지어야 할까.


"꼭... 이름을 지어야 할까요?

저랑 꼭 사귀어야겠어요?

이대로 지내자는 건... 조금 비겁한 걸까요?"


남자는 가볍게 농담으로 시작했는데,

꽤 무거운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어색하지 않았다.

굉장히 우리답다고 생각했다.


"어... 비겁까지는 아닌데

조금 치사하게 느껴지네요?

제가 좀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자도 자신이 조금은 치사한 거 같았다.

하지만 남자의 용인에 조금 기대도 괜찮은 게 아닐까.


"사랑은 아낌이라면서요.

부모님의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동료에 대한 사랑...

연애 말고, 그냥 친구로서의 사랑으론 안 돼요?"


여자에게 연애는 아직도 부담스럽다.


"사귀게 되면,

남사친 연락도 조심해야 하고,

주변에 알리는 것도 신경 써야겠죠.

밤늦게 친구를 만나는 것도 불편해지겠죠.

그리고 의무처럼 뭘 하고 있는지 공유해야 하고,

집에 돌아가면 '잘 들어갔다'는 연락도 해야 할 거예요."


"그게 사랑의 최소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거든요."


남자가 여자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작은 투정들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걸 의무와 책임으로 느끼길 바라지 않았다.

서로에게 의무와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부담스럽다면, 아직 거기까지인 관계인 것이다.

남자는 조용히 여자의 말을 더 기다렸다.


"사귄다는 말 하나로

얻는 것보다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아요.

당신의 표현을 받아들인다고 변하는 게 너무 많아요.

지금이 좋다면, 그걸로는 안 되나요?"


남자도 사실 승낙 하나로

관계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기다리는 것을 바란 건 아니었다.

승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승인이 없다고 이 관계를 끊어내는 것도

남자에겐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연애 미수를 하시겠다?"


"연애 미수요?"


"이게 연애 미수가 아니면 뭐예요?

주변 사람에게 물어봐요.

의도는 거의 연애인데 연애는 아니래.

치사하다 진짜"


남자의 투정에 여자는 웃었다.


"연애는 무서운데,

이런 말장난이 너무 좋아서 어떡하죠?

그래요. 우리 연애 미수하죠, 치사하게."


"좋아요.

사랑은 용인이잖아요.

까짓 거, 우리 연애 미수 합시다.

실수로 연애하면 깜방가겠네."


남자도, 여자도 서로의 농담에 웃었다.

고백이 아니라 해도,

사귄다는 말로 묶지 않아도,

함께한 이 순간에서 봄내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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