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의 다섯 번째 거절?
"우리, 사귀는 것처럼 보인데요."
그걸 이제 알았어?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연애 미수 하기로 했잖아요?
저 이제 깜방가는거에요?
이렇게 보내는구나..."
여자는 피식 웃었다.
역시 이 남자는 진지한 이야기도
무겁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 여유에 기대,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질문을 꺼내본다.
"깜방을 보내려고 좀 생각을 해봤는데요."
남자는 들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정말이야?
"오... 드디어 승낙인 거예요?
얼마나 다녀오면 돼요?
보내놓고 다른 남자 만나는 건 아니죠?"
깜방에 다녀올 생각도 있었나.
여자는 남자의 반응이 싫지 않다.
"승낙은 아니고...
그래요. 당신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나,
연애 감정이 아직 느껴지지 않아요.
사귀기 시작하면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관계가 변하는 게 두려운 거 같기도 해요."
남자는 우리의 관계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약속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자신의 과오를 반복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말없이 여자의 말을 기다렸다.
"사귀게 되더라도...
과한 헌신이 아니라
지금 같은 작은 배려들이 이어질까요?"
솔직히 당신과 이야기하면 즐거워요.
차를 넘치게 따르는 것도,
심지어 도를 넘는 헌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즐거웠어요."
여자는 잠시 숨을 골랐다.
남자와 이야기했던 순간들은 향기처럼 배어 있다.
뜨겁게 타오르지는 않아도, 은은히.
"하지만 여전히 두려워요.
지금은 당신이 나를 위해 기꺼이,
즐겁게 해주는 이 모든 배려들이...
'여자친구'라는 이름 아래 당연한 것이 되고,
이따금 잊어버리면 서로에게 서운해하는...
그런 소홀함으로 변해버리는 관계가 될까 봐.
즐거운 이 관계가, 즐거움만 있지는 못할 거 같아요."
남자는 생각했다.
사랑이란 게 어떻게 즐거운 일만 있을 수 있을까.
사랑을 용인이라 말하는 것은,
괴로운 일도 기꺼이 참아가며,
서로에게 맞춰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배려를 잊고, 소중함을 잊을 때도 있을 거다.
하지만 괴로운 일이 생긴다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에 대한 노력이 부족할 때,
우리의 관계는 변할 거다.
그건 남자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남자는 함께 노력하자고 말해야 했다.
변했다는 투정도 가끔은 필요할 것이다.
남자는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하지만 농담처럼 말했다.
"물건을 사기도 전에 환불부터 알아봐요?"
여자는 놀랐다.
평소 같은 농담이라기에는,
남자가 꽤 진지했다.
"네?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남자는 여유와 웃음이 남아있었지만,
꽤나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제 사랑은 환불 같은 거 안되거든요.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AS가 부실할까 미리 걱정부터 하는 건,
연애 미수보다 더 치사한 거 같은데요?"
여자는 남자의 단호함에 놀랐다.
농담 같은 말이지만, 남자의 단단한 태도가 느껴졌다.
"아... 그런 뜻이 아니라..."
남자는 전에 없이 진지했다.
그러나, 온화했다.
단호가 단절은 아니니까.
"그럼 제 사랑은 못 팝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제가 거절하죠.
반품, 환불 안 할 자신 있을 때 말해요.
나는 기다리는 거, 자신 있는 사람이거든요.
반품, 환불 생각하면서 사랑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거절을 당했는데도,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아니 이게 어떻게 거절일까.
오히려 이 단단한 남자의 진심이,
흔들림 없는 그의 태도가... 사랑스럽다.
불같이 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어도,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 있구나.
타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뜨거워지는 얼굴을 애써 감추며,
여자는 중얼거렸다.
"... 반칙이에요, 이건."
자신의 진심에 여자가 짓눌리기 전에,
남자는 다시 완연한 농담조로 말했다.
"고객님, 반품, 환불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고객님도 반품, 환불보다 상품을 생각해 주세요?"
여자는
남자가 거절을 말하면서도
표현을 할 수 있는 놀라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항상 그래왔다는 것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