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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Aug 10. 2022

비가 그치면

해가 뜬다. 해가 뜨면...

어릴 때부터 비 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즐거운 추억을 박박-긁어모아보자면, 비 맞고 축구했던 것?

조금 더 어릴 때로 흘러가 본다면, 각자 다른 색의 우산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 움막 같은 집을 만들고 그 안에서 별 이야기 없이도 웃었던 기억. 이 정도의 부스러기가 나올 것 같다. 그 또한 즐거웠다면 즐거웠던 추억이니 소중하게 모아 추억의 유리병에 넣어둬야지.



생각해보면 단순한 이유에서 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하고 그런 우산을 들고 다니는 건 너무 귀찮고, 옷이 젖는 게 싫고, 신발이 젖는 건 더 싫었다.

어릴 적, 체육시간을 밖에 나가서 뛰어놀지 못하고 교실에서 자습으로 시간을 보내는 날에는 창밖의 비를 노려보곤 했었다. 정확히 말해보면, 뿌려대고 있는 건 비구름이거늘. 비를 째려봐서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비가 억울할 수도 있겠구나. (그랬다면 미안하다.)


요 며칠 지겹도록 비가 왔다. 노려봐서 될 일이 아니었다. (내가 졌다.)

서울, 경기 몇몇 곳은 침수가 되었고 크나 큰 피해도 속출했다. 고향 친구들과 엄마는 집 괜찮냐며 안부 연락이 왔다. 다행히도 집 안에 물이 들어온다거나 내가 물에 잠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집 뒤에 있는 산이 무너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으면 했겠지. 문득 매일 운동하는 곳에서 인사하던 고양이가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잔뜩 화가 난 듯 쏟아지던 비는 오늘 하루 잠시 멈췄다. 그리고 며칠만인지 파란 하늘과 매미 울음소리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 아침 수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제법 쾌청한 하늘에 가장 먼저는 드는 생각은...............


"지금이다. 빨래!"


내일부터 다시 온다고는 하지만, 잠깐이라도 떠있는 를 보고 있자니 세탁망에 쌓여있는 빨래를 가만 둘 수가 없었다. 비가 많이 올 거라는 예상 때문에 모든 일정을 취소했던 하루가 무책임하게 비어버렸다.

향긋한 빨래를 햇볕에 널어놓고 나니 구멍나버린 오늘 하루가 보였다. 달력을 한번 훑어보고 생각하고. 생각 한번 하고 달력 한번 훑어보고를 반복하고 나니 비로소 '내일이 생일이구나'라는 사실을 애써 무미건조하게 느껴보려 노력한다.


특별하길 바라지만 기대하지 않는 날.

신경 쓰지 않는 척 하지만 스스로 은근히 거슬리는 날.

기분 좋은 날은 맞으나,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가득 한 날.

갖고 싶은 것은 딱히 없지만, 나를 위한 선물 하나쯤은 하고 싶은 날. (하지만 안 하고 넘어감.)


그게 나에겐 '나의 생일'이었다.

생일 전날 ''라도 보라는 뜻인 건지 정작 전날 ''이 이렇게 좋다니.

이러면 내일 비가 올 확률은 조금 더 높아지기에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가 눈이 훤이 보인다고나 할까?

작년 생일에 뭐했더라? 곰곰이 생각해봐야 기억날 정도의 날이었나 보다.

동네에 가성비 좋아 보이는 파스타 집에서 혼자 파스타를 먹었었던 것 같다. 기억이 맞다면 그 가게는 그 뒤로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허전한 생일을 조금이라도 특별해보고 싶었던 나 홀로 파스타는 그냥 보통의 하루보다도 아쉬운 하루가 되었었다. 그 뒤로 파스타는 내가 해 먹는 게 더 맛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잘할 수 있는 요리 메뉴 추가되고 좋지 뭐-


베란다 천장을 두드리던 빗소리가 멈추고 기분 좋은 새소리와 매미소리가 창 너머로 들어오면 그에 맞춰 키보드를 두르리는 소리가 제법 운치 있다. 내내 켜놨던 에어컨을 잠시 꺼두고, 산들산들- 거리는 선풍기 바람 앞에눈을 감고 있으면 졸음이 쏟아져 온다. 그동안 쏟아부었던 비와 바통터치하듯.

노곤한 생일 전 날. 문득 지금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생일이 훌쩍 지나가면 어떨까? 라는 마음에도 없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내숭이라면 내숭이고, 쿨한 척이라면 쿨한 척이지만.

언제나 생일은 그런 날이었으니까.


잠시 떴던 가 주는 건조함이 지난 촉촉함을 끌어올린다. 깊고 깊게 박혀있던 빗물들이 다시 위로 올라가면, 내일부터 다시 쏟아부을 준비를 할 것만 같다. 일기예보도 그러더라. 온다고.


올 테면 와라- 어차피 내일은 비 오는 목요일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니까.


끝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조각 케이크 들고 뒷산 가서 고양이랑 축하파티라도 해야겠다.


비가 그치면
해가 뜬다.
해가 뜨면
비가 다시 온다.
빈 먹구름이 눈치를 보다 유유히 사라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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