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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Aug 18. 2022

사진에 이름을 준다면

사진 작명소

제법 길어진 머리가 눈을 찌르는 탓에 손으로 쓸어 올리는 게 습관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열심히 기른 머리를 포기할 수야 없지. 생각해보면 왜 기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부터 쭈욱- 기르면 좋아하는 가을이 왔을 때,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단지 그 생각으로 기르고 있는 것일 뿐. 작품 때문이거나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기르는 건 아니다.

어릴 적, 긴 생머리 엄마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게 버릇이었다. 버릇과 습관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느낌으로 구분해 보자면... 버릇은 약간의 부정 한푼? 습관은 그 어떤 것도 넣지 않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의 뜻 그 정도?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느낌. (그냥 제 느낌입니다.)(주관적 주관적)


어쨌든.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일찍이 독립을 시작했던 시점부터 엄마가 아닌 나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게 버릇처럼 나오곤 했었다. 어떤 심리상태에서 만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드럽고 찰랑거리는 느낌을 좋아했나 보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서 머리를 만지는 버릇이 습관으로 넘어가고 어느새 머리로 손이 가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다. 시간이란 건 많은 것을 내어주지만 또 많은 것을 가져간다.




쓸어 올리다, 순간 넓어진 시야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먼지가 보였다. 검은색 가방이라 더 잘 보인 거일 수도.

카메라 가방은 일찍 찾아온 겨울의 눈처럼 때 아닌 절경을 보여주었다. 민들레 씨앗 불어내듯 불다 보니 안에 있던 카메라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X-T200 오겡끼데쓰까-)


처음 반했던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손에 혈액순환 문제였던 것인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카메라를 잡는 순간 찌릿찌릿-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이건 진짜다.)

투정 부리는 건지, 투지가 불타는 건지.

어쨌든.

둘 다 부응하게 위해 집안 곳곳을 찍어댔다. 그리고 찍힌 사진들을 옮기고, 멍-하니 보고 있으니 이름을 갖고 싶어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소통이 느껴졌다. (잘 느끼는 편)


 

Fuji film X-T200 _베란다 창밖

쉼터의 성장: 푸릇푸릇 나무부터 왼쪽의 집. 그리고 나무 뒤에 벽돌집. 또 그리고 벽돌집 옆에 콘크리트 빌라.

인간이 쉬고자 하는 공간이 성장하고 있다. 오늘 같은 날은 푸릇푸릇한 나무 아래 그늘이 단연코 1등.



Fuji film X-T200 _부엌 창

연장의 꿈: 요리를 할 때 각자 역할이 있을 것이다. 하나 도구 이전에 그들에게도 꿈은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매달려있기 훨씬 이전의 꿈들. 달리 방법은 없겠으나, 꿈속에서라도 꿈을 이루길 바라본다.


Fuji film X-T200 _옷방 창

섹시한 흰 티: 내가 입었을 때는 그냥 흰 티였는데 벗어서 걸어 놓으니 옷이 섹시해졌다. 결국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암-내 탓이지.



오랜만에 누른 셔터에 기록된 사진들에게 이름을 주고 나니, 괜한 뿌듯함과 친해진 것 같다.

가끔이지만 한번씩 만날 때마다 즐겁고 뜨거운 친구처럼 지내보려 한다. 엑스티 이백.



이름이 필요했던 것일까.
생기고 나니, 한층 더 밝아진 사진은
생기 넘쳐나 보인다.
생에 단 한 번의 이름.
생각만큼 괜찮은 작명.
이름 필요하신 분_'사진 작명소&진작'에게 오세요.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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