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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Dec 30. 2022

떨어지길 바란 면접

탈락 소식에 다행이라고 내뱉는 한숨

대게 우리는 한숨을 쉰다는 건 힘들 때나 걱정이 있을 때. 누군가 한숨을 쉰다면, 그렇게들 물어본다.

"무슨 일 있어?" " 무슨 고민 있어?"라고. 또는 안도할 일이 있을 때에도 한숨을 쉬곤 한다.

어쩌나 저쩌나 한숨은 그런 쪽으로 통용될 때가 많다. 

방송에서 본 것이었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한숨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크게 숨을 깊이 마시고 보란 듯이 내뱉는다. 그럼 정말 호흡도 정리되고 몸이 느슨해지면서 약간의 잡생각들이 밖으로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기분 탓일 수도. 아니면 생각 많은 내 탓일 수도. 




살아가시면서 월급을 받는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엄마이었을 것이다.

짝꿍과 갈라지시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주방일에 생각보다 재미를 느끼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약간의 안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조금씩 몸이 지쳐 간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셨다. 


"그럼 일을 그만하는 게 어때?"


"그럼 뭐 먹고살아?!"


"밥!"


시덥지 않은 농담으로 다소 진지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가벼움을 담아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간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도 하시고 괜찮으실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괜찮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1년... 1년...을 넘어간 것 같다. 캐럴이 울리고 온 세상이 찬란한 불빛들도 비치면 사람들은 어느새 크리스마스라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하며 행복을 사곤 한다. 사실 크게 감흥이 없었던 터라, 반짝이는 건 불빛이고 울려 퍼지는 건 그저 멜로디에 불과했다. 그냥 평소보다 조금은 신나는 분위기의 세상 정도?


그런 크리스마스이브. 외출을 준비하고 나가려는 찰나에 울려 퍼진 전화.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분이셨다. 사실 나랑도 친구이기에 호칭을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몰라서... (일단은 친한 친구의 아내분으로.)


"놀라지 말고 들어. 지금 너네 엄마 쓰러지셔서 응급실 가고 있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최대한 침착하게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엄마가 쓰러졌고. 응급실을 향하고 있다?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급하게 약속을 취소하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당장 출발할 수 있는 KTX를 타고 급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순간순간에도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도착하기 몇 시간 전쯤에야 의식을 차리시고 검사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어쩌다가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분(?)이 우리 엄마와 함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다. 수영장에서 샤워를 끝내고 탈의실에서 쓰러진 엄마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응급실까지 그리고 검사가 끝나고 퇴원하고 집까지 책임져 준 것이다. 너무나도 고마웠다. 하필 온도 급강하로 인해 KTX 도착시간은 조금씩 지연되기 시작했고 예상 시간보다 훨씬 늦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힘없이 누워있는 엄마를 마주하게 되었다. 항상 하게 말라 있는 두 팔과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직업을 살려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울지 않으려 노력했고, 우울해 보이지 않으려 했다. 이 정도 아무 일도 아니고,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최근 한숨을 가장 많이 쉬었던 하루였었던 것 같다. 검사 결과에는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지만 그래도 당분간 관리와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그리고 또 많은 생각들이 나갔다. 


내년에도 일을 하기 위해 며칠 전 봤던 면접이 떨어지게 되었단다. 축하드린다고 했다. 드디어 쉴 수 있다고.

피식 웃으며, '뭘 축하야 그게...' 라고 말하시지만, 그 가볍게 내뱉는 웃음소리마저도 반가웠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당장 다가오는 새해부터 일을 안 하시고 건강에 집중하실 수 있게 되어서.

돈?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에 돈 보다 중요한 것들이 넘치고 넘쳐난다. 그걸 한번 더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돈이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 오만가지 생각으로 작은 원룸에서 엄마와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즐거울 법한 크리스마스 연휴는 지나갔다.


엄마가 면접에 떨어진 게 이리도 다행의 한숨을 쉬게 될 줄이야. 어쩔 수 없이 다시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 상당히 무거웠다. 빠진 살을 찌워드리기 위해 온갖 배달 음식을 보내드렸다. 멀리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이라는 게 속상하고 슬펐지만, 그럼에도 배달문화의 발달은 최근 그 어떤 발달보다 피부에 가깝게 들어왔다. 그렇게 2022년 마무리가 지어지고 있다.

바쁘고 행복했단 한 해의 끝자락에 차가운 온도의 한숨으로 메꿔가는 중이다. 어쩌면 달라져야 할 2023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는 나의 인생에 위로를.

그리고 내 주변 모든 이들에게는 행복을. (덤으로 나에게도.)




건강하고 또 건강하길.
비록 세월에 장사 없다지만,
고집 한번 더 부려서
세월 이겨봐 주시길.
그럼 아들도 그 세월 속에 여전히 머물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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