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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보고 있었는데

...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by 진작

내 어린 시절 비디오가게의 위치가 집과 가깝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었다. 역세권, 편세권, 먹세권 등등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집 근거리에 어떤 것이 있냐에 따라 가격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가 나지만 요즘 세상에 비디오 가게가 집 근처에 있다고 집값이 들락날락 할리는 전무후무하다. 어디까지나 앞서 말했던 장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찬사일 뿐. 그 누구의 동의나 공감을 얻기 위해 한 말은 아니다.

원하는 만화나 영화를 빌려 검은 봉지에 넣어 빙글빙글 돌리며 들뜬 마음으로 집까지 오는 어린 시절 나의 풋풋함과 순수함과 과감함. 행여 봉지 밖으로 비디오가 뛰쳐나갈 수도 있단 무서운 상상은 하지도 못하던 시절. 그 시절이 문득 그립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찾아온 여유에 선물을 주고 싶었다. 끊어져있던 OTT를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결제를 하고 티비 앞에 앉았다. 딱 한편을 빌려 들뜬 마음으로 비디오를 보던 마음으로. 리모컨으로 로그인을 하고 빙글빙글 이리저리 움직이는 N의 로고가 그리운 시절을 부른다.

오늘도 시절이 될 것이고 또다시 문득 그립겠...... !




새로 나온 시리즈부터 그동안 못 본 시리즈나 영화까지. 밀린 숙제 하듯, 벼락치기하듯. 집 밖에 나가지도 않고 휘몰아 봤다. N의 로고와 !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적당한 길이란 말이야. 만족해.

vvv111.jpg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中 (출처:네이버 영화 포토)


먼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예고편에 있다. 흥미로웠다. 재난 영화인가 싶으면서도 그 재난은 어디서 온 것이며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궁금했다. 글을 써 내려가기 전 혹시나 이 영화를 보고자 한다면 우선 예고편을 먼저 보았으면 한다. 나처럼 끌렸다면 보고,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재미없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참고로 글의 리더가 말했듯 난 재밌게 보았다. 재밌게 보고 있었다?


어쨌든.


초반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분위기와 캐릭터들. 그리고 얼굴만 봐도 알만한 외국배우들이 나온다. 가장 이 영화가 주는 힘은 BGM. 개인적으로는 그랬다. 보통의 스릴러 영화나 공포영화에서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은 엄청난 역할을 한다. 내가 하고 있는 무대예술에서도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 그만큼 인간이 느끼는 청각적 효과가 얼마나 큰 부분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본 영화(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에서는 다소 과하다고 느껴질 만큼 계속 흘러나온다. 긴장감을 주어야 하는 부분에서부터 긴장감이 풀릴 것 같은 곳까지 나도 모르게 계속 깔려있다. 지나고 나니 느껴지는 부분이긴 했다. 그만큼 나도 모르게 영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veew.jpg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中 (출처: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는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지고 챕터 별로 나눠서 장면을 그려준다. 모든 내용을 적을 순 없지만, 간단하게 설명해 보자면 의문의 상황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는데 그 상황들 속에서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이 원했던 것이 그런 것일까? 사실 난 감독이 의도한 바를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궁금했다.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중후반까지 나름 잘 느끼며 보고 있었으니까.


클라이맥스로 치고 올라가는 부분에 드디어 궁금증들을 해결해 주는 대사들이 오간다. 정말 깨끗하게 해소시켜줄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나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다.


바로 여기!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음...


잠시만.


난 사실 스토리나 스포를 적어 내려가지 않는다. 그런 글들이야 검색하면 쭉쭉 나오니까. 굳이 나까지 미래를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 일단 참겠다. 참아보고 빙글빙글-돌리던 검은 봉지를 멈춰 비디오를 조심스럽게 반납하겠다. 마지막 무렵 주인공과 주인공 친구가 주고받은 대사들이 상당히 거슬렸다. 이건 단순히 예술이고 영화고 가상일 뿐. 그저 가볍거나 무거운 농담으로 들어도 되는 것인데 말이야. 난 무거웠단 말이지?



vvvv.jpg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中 (출처:네이버 영화 포토)


재밌게 잘 보고 있었는데.


뭔가 찝찝하게 끝나버린 듯한 느낌이지만 후반부까지 재밌게 봤던 나이기에 중상위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평점은 처참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글을 써 내려간 사람도 있었고, 내가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이 영화의 부분들이 또 누군가에겐 단점이라 느껴졌나 보다.

정답은 없는 거니까. 하지만 결말 부분의 대사는 생각할수록 아쉽다. 근래 이렇게 아쉬운 영화가 있었나 싶다.

영화가 나빴다기 보단 감독이 나빴다? 의도한 건가? 그럼 더 나빴다... 나쁜 사람...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다. 물론 한국말로.

우습지만 자고 일어나니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 사라진 건 사실이다.

가까운 시일 내로 지인을 만나 카페를 간다면 꼭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혹시나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커피 한잔 하실래요?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는 아니ㄱ... !

제목 없음vvvv.jpg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포스터>



동전으로도 비디오를 빌릴 수 있었던 그 시절.
동네에 비디오가게 하나씩은 다 있던 그 시절.
동생보다 비디오가 더 재밌던 그 시절.
동그란 비디오 태엽이 뒤 돌아가 듯.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
그리운 시절보다 그리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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