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두 번째 제주도. 8년만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게 나한테 무조건 좋을 리 없다. 딱히 안 좋을 이유도 없지만.
괜한 청개구리 심보인가 싶다가도 실제 좋다는 걸 경험해 보면 그다지 감흥이 없거나 스스로에게 좋은 점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것을 억지로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 혹은 나만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닌가 라는 자책과 반성?
반성까지 할 이유는 없지만 성찰 정도는 하게 되는 아리송한 경험들. 또 생각해 보면 언제 해보겠냐 하며 해보는 것들에 대한 도전. 도전이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긴 한데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 또 나에겐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으니. 일단 해보는 거지 뭐. 인생 뭐 있나. 한바탕 즐기다 가는 거지. (라고 말하지만 겁쟁이스타일)
제주도 여행.
8년 전 생일, 친한 친구가 제주행 비행기티켓을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제주도도 처음이었고 비행기를 타는 것도 처음이었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주변에 유독 많은 나는 그들에게 흡수되어 동화되기보단 여행에 대한 흥미나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어쩌다 떠나게 된 4박 5일의 8년 전 제주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너무 즐겁고 재밌었던 추억이다. 앞에서 말했던 게 창피할 만큼 재미나게 놀고 온 자신이 머쓱-하지만 이렇게 하나씩 알아가는 거 아니겠나. 원래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존재 아니던가. 추억을 담아둔 채 다시 제주도로 떠나기까지 8년이 걸렸다. 그조차 스스로 계획하거나 시작된 건 아니다. 친한 형들의 제안으로 급하게 떠난 제주도.
그렇게 나는 8년 만에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2박 3일의 짧아 보이는 계획이었지만 나에게는 최적의 기간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여행계획을 다 짜주는 형들과 함께 가니 내가 해야 하는 건 맞장구와 즐기는 것. 사실 8년 전 제주도 여행도 함께 간 친구가 모든 계획을 짜주었고 그 계획대로 졸졸- 따라다니며 즐겼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계획을 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인가보다. 근데 아이러니하다. 좋아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체계적이고 꾸준하며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편인데, 여행계획을 짜라고 하면 뭔가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여행을 포기하기 일쑤였다. 생각해 보면 돈의 문제를 떠나 여행을 마주하는 순간 게으름이 라는 못된 것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둔갑시켜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늘 행복한 시간들은 빠르게 흘러간다. 이번 여행도 그럴 줄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빠르게 지난 걸 보고 나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걸 그랬다. 꼭 이런 건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니까. (에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즐거웠던 이번 제주도 여행.
좋아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이유들을 생각해 보았다.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한 개수의 이유들.
압도적 차이가 없다는 것에 살짝-놀랐다. 그저 그냥 부정적인 느낌에 도장을 찍어버린 건 아닐까. 손으로 슬쩍-문질러 흩어져버린 도장의 번짐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가길. 반드시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 않을 이유도 딱히 없더라고. 다음은 또 몇 년 뒤에나 제주도를 갈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또 한 번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단, 2박 3일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도착해 잠이 들기 전 쌓여있는 사진들을 보고 2박 3일의 하루를 더 해 꿈에서나마 연장을 꿈꿔 보며 잠이 들었다. 피곤했는지 꿈이고 뭐고 기억도 없었던 것 같지만 눈 떠보니 집이라는 사실에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에 여행이란 동화 같은 시간들이 조금 더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현실이 소중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난 늘 현실보단 이상에 상상을 더 해 살아가고 싶으니까. 며칠 더 지나 제주의 바다내음이 코 끝을 스치면 사진첩 활짝-열어봐야지.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쉿-)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도 있지만.
(나는 생각보다 여행을 좋아할 수도.)
오랜만이야. 많이 늦었지?
다시 볼 줄 알았지만 이렇게 늦어질 줄 몰랐어.
다음에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확실한 건 말이야. 볼 수는 있어.
내가 여기 있고 네가 거기 있으니.
그때 또 인사할게.
오랜만이야. 많이 반갑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