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년의 시간(ADOLESCENCE)

어떻게 찍었을까? 롱테이크의 시간

by 진작

궁금은 했으나 쉽사리 눌러지지 않았던 작품들이 있다. 의외로 그런 작품들을 보았을 때 예상하지 못한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물론 누르기까지 용기와 실행력이 이상할만치 필요하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참 삶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생각만 하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일들이 투성이니까. 그나마 오늘 잘 한 건 망설이던 드라마 한 편을 다 보고 이렇게 책상에 앉아 글로 옮겨 적고 있는 시간에 대견함을 스스로에게 느낀다.

그리고 느낀다. 역시 실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1917>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동은 물밀듯 자연스롭고 긴 롱테이크의 향연이었다. 하나의 예술이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전에 많은 정보 없이 망설이던 소년의 시간을 보기 시작했다. 4부작이라는 짧은 이 드라마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어마무시하다는 정보만으로도 클릭할만한 용기를 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알고 있던 정보보다도 더 큰 감탄을 하며 4부작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훌륭한 연기? OK. 인정. 하지만 30분쯤 지났을 때부터 알아차린 롱테이크의 항연.


"잠깐만. 지금 이거 계속 롱테이크잖아?"


그 이후 사실 내용과 연기보다 카메라를 어떻게 들고 옮기고 찍어냈는지가 눈길이 갔다. 흥미로운 내용과 연기. 그리고 이러한 촬영기법들이 이 작품의 완성도를 한없이 끌어올린 것이 아닐까.


xczxcs.jpg <소년의 시간 (ADOLESCENCE)>


설마 4부작 전부 다 롱테이크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가면 갈수록 더 신기할 만큼 롱테이크였다. 드론샷부터 장소를 바꿔가는 내내 따라다니는 카메라.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나에게 더 흥미로웠을 수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유심히 작품을 바라봤던 것 같다.


롱테이크의 칭찬은 이만하기로 하고 짧게나마 다른 느낀 점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누구의 시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물론 원작의 제목은 '<ADOLESCENCE>'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청소년기'라는 뜻이란다. 우리나라에선 <소년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문을 열었다. 문득 작품에 나온 아버지의 시간. 주인공(소년)의 시간.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소년들의 시간을 말하는 장면에서 어쩌면 이 작품은 단순히 바깥으로 보이는 한 소년의 시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나 감독이 의도한 부분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난 그런 심오한 생각을 혼자서 하곤 했다. 이 맛에 보는 거 아닌가. 으흠-


추천할만하다.


'쉼'이라는 나의 시간에 전혀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작품을 본 사람과 주절주절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 있을만하다. 그럴만한 사람이 없지만.


어쨌든.


재밌었다. 주어진 모두의 시간에 공유할 수 있는 이 시간이 헛되지 않길 바라며-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하루를 다 쓴 기분이야
여운인가 싶었는데,
여행이었더라고.
그 시간이 나에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원'이의 비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