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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의 비겁함

결과의 단어

by 진작

'영원'은 참 비겁하다. 결과가 그래야만 통할 수 있는 단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에는 '영원'이라는 단어가 종종 따라붙는다. 몰래 쫓아온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붙어 있더라.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한다.

뭐, 물론 노력 없이 얻으려는 경우도 간혹 가다 있지만 말이다. (간혹이 아닐 수도?)

문득 '영원'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단어가 얻고자 하는 명성에 비해 많은 것들을 너무 많은 것들을 소모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을 때, 상당한 거부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굳이 그럴 필요 까진 없는데 말이야. 그럼 거부감이 불호감이라고 하자.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느낌으로.




영원하기는 쉽지 않구나.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은 너무나도 반가운 손님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손님은 가을이 아니라 나 일수도.

가을을 찾아간 나는 해맑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가을은 늘 그래왔듯 기대에 부흥하며 반갑게 맞장구를 쳐준다. 이보다 쿵짝이 잘 맞을 줄이야. 감수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가을은 언제나 늘 반갑다. 영원히 가을만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영원한 건 없다고.

추상적인 단어의 아름다움 뒤에는 언제나 반대하는 어둠의 단어들이 생겨난다. 만남에는 이별이 늘 따라오듯.


가을의 명절에 만난 엄마는 하루에 한 번씩 결혼에 대한 이야길 하셨다.


"결혼 안 하냐?"부터

"진짜 안 하냐?"

"만약에 어쩌고저쩌고 하면 할 거야?"까지.


질문부터 의심을 거쳐 어쩌다 상상까지 가게 된 것인지. 무한한 상상력과 많은 생각들은 엄마를 닮았나 보다.


되돌려 보내는 답은 같은데 다시 돌아오는 질문은 변경기출문제 일 줄이야. 어려운 문제는 아니기에 손쉽게 다시 답을 돌려보내곤 했다.


"안 해"


결혼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엄마의 사랑도 끝이 난 것처럼, 엄만 나에게 결혼을 물어보지만 넋두리처럼 주절이 곤 하셨다. 혼자가 편하더라, 혼자 재밌게 살면 되지.

그럼에도 끝없는 질문은 때아닌 가을에 찾아온 장마 같았다. 실제로 이번 고향의 명절의 대부분은 비가 왔었다. 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누나와 엄마랑 보낸 시간만큼은 소중했고 편안했다. 날씨가 주는 영향이 크게 없을 만큼의 평온함. 엄마와 누나가 영원히 건강하게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나는 명확하게 알고 있다. 영원한 건 결과에 따른 단어이기에 삶에는 영원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그렇기에 현재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거 아닐까. 해줄 수 있는 걸 해드리고, 드릴 수 있는 웃음을 드리고, 때론 적당한 애교까지도.


영원은 비겁하다. 지켜지지도 못할 약속의 단어. 하지만 영원함의 비겁함 덕에 생겨난 것들도 있을 터.

그렇기에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조금은 선명하게 지시해준다. 방향등처럼.

양쪽길이 아니라 사방팔방 뚫려있는 수많은 선택지에서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말이다.


가을의 명절에 만난 우리 가족은 그렇게 또 다음 계절의 명절을 기약하며 인사했다.

그땐 좀 더 명확한 답을 드려야겠다. 질문을 바꿀 수 있게.




꼭 해야 하는 겁니까.
꾹꾹 참고 참다 물어봅니다.
꼭 해야 하는 거냐고요.
똑똑한 사람이 답을 주세요.
딱 한 개의 답만.
질문도 하나니까.
*질문: 답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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