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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Jun 19. 2022

1막부터 5막까지

인생처럼

나이프 하나 포크 하나 들고 우아하게 썰어가며 한입 먹고 오물오물- 음미하다, 나도 모르게 사르륵- 녹아 내려가는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는가.

라이프(인생) 하나뿐이거늘, 포기한 적 하나 없이 청량하게 웃으며 하하호호- 웃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르륵- 흘러가는 고귀한 나만의 삶이 되지 않겠는가.


억지스러운 단어의 짜맞춤에 어설프게나마 완성된 문장을 보고 있자니,

'이 맛에 글을 쓰지' 하며 무릎을 탁- 치고 경쾌한 타자 소리에 어깨춤이 절로 난다.


삶은 고기가 먹고 싶었나보지 뭐-




대사를 빨리 외우는 편은 아니어도 못 외우는 편은 아니라는 소심한 자부심이 있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수많은 공연들을 스쳐지나 보면 명대사만큼은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걸 보니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닌가 보다.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적인 부분에서 만의 능력치인 듯하다.


이번 공연은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분석을 하면 할수록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심오할 수 있다. 한 번도 우리나라에서 해본 적 없는 외국 작품이기에 번역부터 저 멀리 있는 작가와의 한 박자 느린 소통까지. 세상이 좋아서 망정이지... 비둘기에 편지 묶어 소통하는 게 아닌 걸 감사해야지.


부조리스럽기도 하면서도 담겨있는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파악해본다면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오롯이 그것들이 무대에서 잘 보일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하다. 나 그 의문들을 품고 즐겁게 연습 중! 그러나 가끔은 수 없이 벌려놓은 다른 일들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날이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단 한 번의 퇴장도 없다는 것이다.

1막에서 5막까지.

나조차도 이런 공연은 처음이기에 기대 반 설렘 반 양념 반 후라이드 반...(치킨이 먹고 싶나 보다.)

공연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무대 위에서 계속 연기를 한다. 의상을 갈아입으러 퇴장하는 일이나 장면 전환을 위한 퇴장조차 없다. 한번 태어나서 눈 감는 날까지 나의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느낌.

단순히 60분 넘는 공연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행하는 것을 고작 36년 살아온 지금의 인생과 비교하기에는 터무니없을 수 있지만, 대입해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거 아닐까.


지금 어디쯤 왔을까. 몇 막이 진행되고 있을까. 그리고 몇 막까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 대본을 보다 샛길로 빠지고 말았다. 기왕 빠져버린 샛길에서 산책을 해보고자 컴퓨터를 켜고 끄적이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지난 몇주를 되돌아보고 사색에 빠져 천천히 산책을 하던 중 막연하게 찾아온 공허함을 넘어 생각의 공복감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고개를 두어 번 흔들며 본래의 오늘로 돌아왔다.


그렇게 퇴장 없는 공연을 준비하는 요즘,

나는 몇 막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어떤 커튼콜을 하게 될지. 궁시렁궁시렁 들리지 않는 혼잣말로 휴일을 마무리해본다.


우리의 인생은 몇 막인가요?



삶은 고기도 좋고,
구운 고기도 좋고,
튀긴 고기도 좋고,

먹을 수 있는 지금의 삶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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