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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Jul 03. 2022

영원히 몰랐으면 하는 사실들

그리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려본 적 있는가.

하염없이 내리는 장마철 비처럼 지독한 습기가 우리의 두 눈을 적셔준 적이 있는가.

장마가 지나 찾아온 무더위가 젖은 눈을 말려 준다. 말려주다 못해 메마르게 만든다. 언제 그랬냐는 듯 더 큰 태풍이란 게 찾아와 쓰라린 바람과 함께 다시금 눈을 적셔준다.

나는 그 누군가가 그리워하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몇 년 전 걱정 없이 웃던 그때 시간이 멈춰있길 바란다.

그저 장마, 태풍보단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평생 웃으며 살아가길.




코로나 이후 엄마가 누나를 찾아가는 것에 많은 제약이 걸렸다. 바이러스 하나가 가져다준 세상에 영향력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물리적 타격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준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


그나마 명절이면 볼 수 있었던 나조차도 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까닭에 오매불망 이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전보다 많이 느슨해진 요즘, 엄마가 누나를 만나러 간다고 신나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매번 찾아가는 소식에 한켠에 불안함은 항상 존재했다.

만남 이후에 보내주는 사진들과 누나의 건강상태를 들을 때면 조금 더 냉정해지고 이성적으로 변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나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 지켜야 하며, 책임지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한다. 나는 언젠가 내 차를 타고 누나랑 엄마랑 큰 정원이 있는 곳에서 함께 고기를 구워 먹어보고 싶다. 그리고 큰소리를 내지 않아도, 말을 다시 되묻지 않아도 되는 시시콜콜한 일상의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이러한 바람들 때문인지 언제나 누나와 엄마의 사진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짧은 만남의 시간에서 엄마는 누나와 통화를 연결시켜줬다.

언제나 그랬듯 대화들은 정해져 있다.


'잘 지내?'

'아픈 데는?'

'밥은?'

'필요한 거 없어?'

'운동해 운동. 건강해야지'


동생이 누나한테 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질문을 이 오가면 언제나 그랬듯 긍정적인 답변들이 달려온다.  

어김없이 짧은 만남은 끝이 나고, 집에 도착한 엄마에게 함께 찍은 사진들이 왔다. 전보다 좋아진 얼굴에 한시름 마음을 놓고 먼길 갔다 오느라 고생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톤과 단어가 나왔다.


누나에게서 들은 아버지의 소식.

엄마도 몰랐던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던 모양이다. 며칠 전 누나를 만나러 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일. 어쩐 일로 찾아갔을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나는 누나가 몰랐으면 하는 사실들이 있었다.

집이 기울어지고 박살이 난 뒤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몇 년 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일들.

정이 많고 세상에서 제일 착한 우리 누나는 내가 미워했던 아버지도 좋아했고, 왕래가 많지는 않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도 좋아했다. 그렇기에 슬픈 소식들을 누나가 몰랐으면 했다.

행복했던 과거에 머물러있길 희망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머물다, 여유가 생겨났을 때 현재로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무너졌다.

불쑥 찾아간 아버지는 그 모든 사실들은 누나에게 말하고 떠났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누나는 눈물을 흘렸고, 이런 사실들을 엄마에게 전달하면서도 울었다고 한다.

누나가 그리움을 몰랐으면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리움이라는 건 슬프게만 들려왔으니까.


정말 몰랐으면 했는데, 알게 되어버린 것이다.

잠시 해가 떠있는 줄 알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불쑥- 찾아온 것 같았다. 당황한 엄마는 담당 선생님에게 다음부터는 행여나 아버지가 누나를 데리고 외출을 하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세상에 몰랐으면 하는 사실들을 알게 되어버렸을 때.

그것을 지켜주려고 했던 이보다 그것을 알게 되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나의 배려가 이기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달려가고자 하는 내일을 과거로 되돌려놓으려는 아버지가 더 미웠다.

생각을 돌려보고자 주말 내내 대본을 바라봤지만, 잡생각만 몰려들 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위로받지 못한 나에게 스스로 위로해주고서야 새벽이 왔다. 그제야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은 글씨였던 대본들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늦은 새벽이 덮어준 이불에 잠이 들고 말았지만.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쌓여있던 잡생각들이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미 알아버린 사실들을 어쩌겠는가.

누나가 건강하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다시 달려가야지. 앞으로.


 



연습 가는 길에
오직 오늘만 생각나길.
빈틈이 있다면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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