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운치 있게 내리는 보슬비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지나갔다. 시끌벅적한 몇몇의 가게들을 지나 불 꺼진 간판을 허공 보듯 훑어보다 보면 집에 도착한다. 축축한 하늘에 짓눌려 축- 늘어진 채 도어록에 매달린 숫자들과 마지막 터치를 하면 비로소 느껴진다.
'오늘 하루도 끝났구나.'
해가 쨍쨍-하던 마른하늘의 무더위 속, 연습과 공연이 소나기처럼 끝이 났다.
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남았다.
리허설 때 나가버린 목을 되돌아오게 만들기 위해서 아무리 손짓했지만 끝끝내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떠나간 목소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무대에 오르는 게.
온전히 힘 조절을 하지 못한 나의 잘못으로 돌리고 자책에 빠져있을 틈도 없이 목에 좋다는 것들은 분 단위로 집어넣었던 것 같다. 달콤하진 않아도 쓴 약이 몸에 좋다고. 그걸 알았는지 관리한 만큼 꽤나 빠른 속도로 괜찮아지긴 했었다. 허나 스스로 편안한 목 상태이거나 만족스러운 컨디션은 아니었다.
공연을 보러 와준 몇몇 지인들은 공연의 내용보다 나의 목 상태와 컨디션을 먼저 물어봤다.
'목 괜찮아?'
'땀 너무 흘리는 거 아니야?'
그도 그럴만했다. 몇 차례 갈라진 듯한 목소리와 두꺼운 의상. 거기에 뜨거운 조명 탓에 흠뻑-흘려버린 땀까지.
나 홀로 소나기를 잔뜩-머금고 뿌려대는 구름을 달고 공연 하는 것 같아 보였을 것이다.
'괜찮아지겠지', '괜찮을 거야' 라는 스스로의 최면과 외면으로 3일을 버텼다.
무대 정리까지 다하고 집으로 힘 없이 걸어 올라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스프레이로 굳어버린 머리카락과 메이크업을 지우고 찬물로 샤워를 하던 중 공연에 사용되었던 색종이가 물살에 떠밀려 내려왔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도 몇 시간이나 나에게 붙어있었을까. 하수구로 떠내려가기 전 한번 더 붙잡고 고이고이 보내줬다. 그렇게 에어컨을 풀가동하고 잠이 들었다.
그 탓일까. 아침에 일어났더니 코가 잔뜩 막혀있었다.
이 코를 뚫어주기 위해 오늘은 정말 맛있는 걸 해먹을 예정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결국 마트 가서 마늘과 스파게티면을 사서 알리오 올리오를 해 먹겠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트를 가기 전, 핸드폰에 사진첩을 넘겨보며 지난 연습과 공연을 리마인드 했다.
대부분의 사진들은 커튼콜 사진이더라.
연습이 가장 짧은 커튼콜이 이리도 완벽하다니. 어쩌면 이 커튼콜 하나 하기 위해 달려온 걸까 싶을 정도로.
흩날리던 색종이들이 하얀 바닥에 내려앉아 백야의 별처럼 수놓는다.
사뿐히 올라선 두 발을 다소곳- 모으고 인사한 뒤 고개를 들면 빛나는 조명 틈 사이로 또 다른 별들이 장관에 박수를 보내고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별을 보고 그들도 별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