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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Jul 21. 2022

오랜만에 넘어졌다

사실 자빠졌다.

뜀박질을 좋아하는 나는 어릴 때부터 다치는 게 일상이었다.

긁히거나 멍들어서 집에 들어오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매번 다쳤다는 말을 엄마에게 꺼내기는 어려웠다.

언제부터였을까. 뛰어도 넘어지지 않고, 다치는 일들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가 된 게.

이제는 다치고 집에 들어와도 보고할 사람도 보여줄 사람도 없는 지금이 어쩌면 맘껏 다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는 아닐지.




정상 컨디션을 찾기 위해 운동복을 입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항상 뛰던 곳을 도착하고 난 뒤 주변을 둘러보니 제법 무성하고 길게 자란 풀들이 종아리를 스쳐 지나갔다. 무거워진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며 조금씩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나만 아는 장소라고 생각했던 이곳도 이제는 나름의 명소가 된 것인지. 가끔 한두 분씩 어르신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운동을 하고 계셨다. 이 날도 어김없이 맨발로 온 산의 정기를 받으며 운동을 하고 계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계셨다.

열심히 뛰기 시작했지만 예전만큼의 속도가 나질 않길래, 억지로 힘을 주고 뛰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욕심을 내면 안 된다.

정말 오랜만에 받은 느낌이었다. 돌뿌리에 걸려 붕-떠서 넘어진 게.

넘어지지 않으려 애써볼 틈도 없이 시원하게 넘어... 아니 사실 자빠졌다. 넘어진 거지만 자빠졌다.

그렇니까, 넘어진 건데 자빠졌다가 더 맞는 모양새인 거지.

난 그렇게 자빠졌다.


'돌뿌리가 자랐나...'


하필 입고 갔던 흰옷은 멋있게 땅색으로 물들고, 아무도 못 봤겠지 하며 당당하게 들었던 고개가 민망할 만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주머니의 눈길이 고통을 덜어줬다. 옷이 상당히 더러워졌나 보다.


"괜찮아요? 털어줄까요?"


"아니에요. 뛰다 보면 털어지겠죠 뭐 하하하-"


세상 이렇게 쿨할 수가 있을까. 뛰다 보면 털어지다니.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창피함이 고통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열심히 뛰고 집에 와서 샤워하는데 그제야 느껴지더라.


'아...따갑다...'


왼쪽 종아리와 골반은 긁힌 자국과 멍 자국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따뜻한 물로 씻고 다친 부위를 마사지해주며 생각에 빠졌다. 왜 넘어졌을까. 분명 자주 뛰던 곳이었는데. 뛰는 자세가 잘못된 것일까.


오랜만에 넘어진 게 낯설다고 느껴졌다.

다시 일어서서 뛰면 그만인 것을.

긁힌 상처야 시간 지나면 딱지가 생겨 희미해질 것이고, 멍든 것이야 점차 사라지는 거고, 통증은 생각보다 금방 빨리 사라지는 것을. 쓸 때 없이 깊어진 생각에 넘어진 게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생각조차 드는 건 왜일까.


다쳤다는 것도 치료하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하고, 일어서는 것도 혼자가 익숙한 요즘.

이제 더 이상 서러울 이유도 외로울 느낌도 무뎌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샤워할 때 마주한 상처들에게 덤덤히 위로해준다.





통증마저 익숙하다고 느껴지던 날.
홀연히 사라진 멍에게
다음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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