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니 별건 아니고, 나 아는 사람이 ○○에 다니는데, 이번에 사람을 하나 뽑는다는데 너가 생각나서...
용건은 이러했다. <○○라는 기업에서 운동 관련 업계에서 종사해 본 사람을 대상으로 인터넷 플랫폼에서 운동 콘텐츠를 기획해줄 MD를 뽑는데, 너를 추천해주고 싶다.>
나 : 아 그래? 나야 좋지.
친구 : 그럼 내가 공고 보내줄 테니까 확인해봐.
나 : (검토 후) 야 근데 여기 지원요건에 운동 업계에서 5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고 쓰여 있는데 괜찮아? (나는 6개월의 경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친구 : 괜찮아, 그건 그냥 포맷이고 실력이 가장 중요하댔어. 이 기업 되게 유망한 기업이야. 너도 들어가면 엄청 좋을 거야.
순간 너무나도 좋은 기회가 왔다는 직감과 함께,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지금 당장 하는 일이 없었기에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틀 후, 해당 기업 인사과에서 전화가 왔고 작성한 서류를 인사과 메일로 보내달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또다시 사흘을 기다려,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메일을 받았다.
다음으로는 직무 역량을 시험하기 위한 모의 과제를 받았다. 과제의 종류는 4개, 기한은 4일. 그러나 마찬가지로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앉은자리에서 18시간 만에 과제를 마쳤고(하루를 통째로 쏟았다. 초몰입 상태였다.), 3일 후 과제 전형에서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이제 남은 관문은 두 개, 직무면접과 인성면접.
친구와의 통화에서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서류와 과제에서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최종 합격에 대한 약간의 기대가 부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4일의 직무면접 준비 끝에, 코로나로 인한 화상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은 순조로웠다. 2대 1 면접으로 진행되었고, 특이하게도 10분, 20분 질의를 묻고 답하는 보통의 면접과 달리 이곳에서의 면접은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면접관 : 네 안녕하세요, 저는 ○○에서 MD로 있는 □□입니다.
나 : 네 안녕하세요, 저는 요가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원자 이진석입니다.
... ...
면접관 : 혹시 진석님은 MD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고객이 있다면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나 : 운동 콘텐츠를 제공해주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기업은 자신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물건이나 서비스의 퀄리티를 최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회사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기업 브랜드의 가치를 올려 궁극적으로는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기업은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를 잇는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당 기업의 MD는 운동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급자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이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지원하고 보조하는데 최우선의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답을 잘한 것 같았기때문이었다.
면접은 순조로웠고,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곧바로 발생했다.
... ...
면접관 : 그런데 진석님은 왜 요가강사를 하시다 이 길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나 : 최고가 되기 위함입니다. 저는 한국역사학과를 재학하다 운동 업계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현재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도전 중에 있습니다. 해당 기업에서 MD로 활동하며 많은 분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성장하기 위해 지원하였습니다.
면접관 : 그럼 진석님이 생각하시는 최고의 길은 기획자로서의 길인가요? 아니면 요가강사로서의 길인가요?
나 : 요가강사로서의 길입니다. 저는 현장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며 그들이 바뀌는 과정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몸으로 직접 뛰며 적게는 개인 개인을, 넓게는 사회와 세상을 변화하고 싶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세상을 좀 더 넓게 배우고 싶습니다. 따라서 ○○에 지원하였고, 요가강사로서의 저의 피트니스 시장의 이해는 ○○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관의 눈빛에서 의심의 불꽃이 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말실수했다,' 하는 판단과 함께 순간적으로 위기를 모면할 멘트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즉시 생각을 고쳤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에 스쳤다. 내가 방금 대답한 저 대답은 가감 없이 바로 내 머릿속에서 나온 말(회사측에서 의도한 부분인지 모르겠지만 1시간동안 진행되는 면접이었기에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머릿속의 진심이 툭 튀어나온 모양이었다)이고 실제로도 나는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저 대답을 듣고 나를 채용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회사의 방향과 나의 방향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방금 이 대답을 오히려 내가 회사를 평가하는 대답으로 삼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면접이 종료되었다. 확률은 반반일 거 같은데 아무래도 떨어질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이틀 후, 직무면접에서 최종 불합격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내부적으로 오래 논의한 결과, 안타깝지만 이번 채용에서는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업무적으로 추구하시는 방향과 ○○에서 요구하는 역량이 다르다고 판단된 결과이니, 더 좋은 기회 있으실 거라 믿습니다.>
음.. 현재 나의 삶은 엉망이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코로나 19로 인한 고용 불안정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아마 나도 그 증상을 겪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아닌가 싶다.
며칠 전, 해당 기업에서 최종 불합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면접 후부터 직감했던 사실을 전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너무나도 심란하였다. 그래도 기업에 몸을 담고 있으면 어떤 특정 사건들에 심하게 고용 안정성이 요동치지 않을 텐데, 하는 그동안의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내가 그때, 그 대답 대신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내 소신대로, 내 진심만으로 세상을 살겠다고? 내가 너무 딱딱한 건가. 너무 나이브한 건가. 너무 세상 물정 모르고 이상에만 물들어 있는 건가, 하는 자책감 섞인 물음이 턱밑으로 꾸물꾸물 올라왔다.
나는 정말 이 업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고,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하루하루 뛰고 싶은데 그 과정이 너무나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요가 업계에 진입하였을 때, 처음 수업을 받게 되고 그동안의 설움이 터져 나와서 방에서 펑펑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혼자 있는 그 방에서 나는 분명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이것보다 훨씬 더 힘든 날이 부지기 수일 거고, 최고가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여정은 포기하고 싶을 만큼 엄청나게 괴로운 날들 투성이일 거라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일궈낸 이 성취(첫 수업을 받게 되는데 많은 좌절이 있었다. 남자라는 사실 때문에 수업이 캔슬된 경우도 있었다)처럼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나는 오늘 이 글을 쓰며 또 하나의 비망록을 작성하고자 한다. 뜻밖의 구직활동이 나에게 안겨 준 또 다른 시련. 이 시련을 기회 삼아,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