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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석 Jan 24. 2021

자린이의 100km 라이딩 도전기-1

Day 1 본격 자린이 수난기

이 글은 2021년 1월 20-21일 양일 간 약 100km를 주행한 한 자린이의 고난의 라이딩 주행기록입니다. 라이딩 간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코로나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주행하였습니다.




2021년 1월 20일 (수)



11:00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리..]


괴롭게 손가락을 움직여 천천히 알람을 끈 후, 휴대폰 화면을 켜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잠에 취해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온몸에 근육통이 느껴졌습니다.


'아.. 이제야 11시구나.'


휴대폰 화면을 끈 후, 이마 위로 손등을 가져가며 생각했습니다. 오늘 출발.. 할 수 있을까.



11:30

가까스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마치 물에 젖은 옷을 겹쳐 입은 듯 무거워진 몸을 풀기 위해 30분간 가벼운 요가를 한 후 미지근한 물 한잔을 손에 든 채 소파에 앉았습니다.


전 날, 오늘의 대장정을 대비해 먹었던 호빵 4개가 오히려 컨디션을 극도로 악화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야간에 급하게, 그리고 과하게 먹은 탓인지 호빵은 배에서 탈을 일으켰고 이후 수시로 화장실에 드나드는 바람에 단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속이 좋지 못한 상태에 숙면까지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가 아픈 것은 물론 약간의 어지러움과 근육통까지 있었습니다.


'진짜 갈 수 있을까...'


소파에 앉아, 과연 오늘 이런 도전을 하는 것이 맞는 결정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도전은 제가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었던 100km 가량의 라이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30-40km를 주행해 보았을 뿐이지 그 이상의 거리는 주행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도전에서 내 몸이 과연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내가 100km를 주행할 수 있는 체력이 되는지 아닌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단 한숨도 자지 못한 상황에서, 배까지 아프다니.


그렇게 한참을 생각해본 결과, 출발 시간을 1시간 미루고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각별히 귀 기울이며 천천히 조금이라도 가보자,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오후 1시를 기점으로 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코스는 집(양주시) - 팔당역 - 국민대 - 집으로 총 120km이었지만 일정에 차질이 생겨 팔당을 거치지 못하였습니다. 첫날 베터리 방전으로 10km 기록이 유실되었습니다 ㅠㅠ




13:00 - 15:10  1구간 [양주시 덕계동 - 노원구 공릉동]


정말 많은 걱정으로 라이딩을 시작했지만, 다행히도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라이딩에 몰입하다 보니 조금씩 몸이 괜찮아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만 초반에 과하게 긴장을 한탓인지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다 정신을 잃었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지 걱정이 되어서 정신을 정말 바짝 차리고 주행했습니다) 손목과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 채 라이딩을 했는데, 이는 후반에 해당 부위에 찌릿찌릿한 통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양주에서부터 의정부로 진입할 때까지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전부 녹지 않아 노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서행했습니다. 그래도 자전거도로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흥얼흥얼 거리며 자전거를 탔는데 초반이어서 그런지 기분이 많이 좋았습니다.


이후 의정부역 부근 자전거 매장에서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기 위해 휴대폰 거치대를 구입한 후 서울로 진입했습니다. 저는 지도를 보고, 실시간으로 라이딩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오픈라이더라는 어플을 이용했는데 계속해서 휴대폰 화면을 켜놔야 했기 때문에 배터리 소모가 엄청난게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이 배터리 문제는 결국 라이딩 전반에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서울로 진입하는 구간의 중랑천. 경치가 어마어마했는데 사진으로 담지 못해 아쉽습니다. (벌써 해가 지는 듯하네요)


의정부역 부근에서 출발해 10여km 정도 주행하니 오른쪽으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도봉산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넋이 나가 자전거를 타며 힐끔힐끔 도봉산을 바라보며 라이딩을 이어나갔습니다. 이때까지는 컨디션도 좋았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이때가 20km 정도의 구간이었던 것 같은데, 후반의 체력관리를 위해서 최대한 체력을 아끼며 주행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즐기며) 주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공릉동에 도착했고 2구간인 경춘선숲길로 진입하게 됩니다.




15:10 - 18:00 2구간 [노원구 공릉동 - 수석한강공원]


문제는 이 구간부터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지도를 보기 위해 계속해서 켜놓고 있던 휴대폰의 배터리가 50% 미만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1구간의 자전거도로와는 달리 새로 진입한 경춘선숲길의 자전거도로가 자전거 전용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도보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보행자로 가득 차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휴대폰의 배터리는 시시각각 바닥을 향해 가고 있고 시간은 조금씩 늦어지고 있는데 도저히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갈게요,'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며 천천히 인파를 헤쳐나갔고 다행히도 화랑대역을 기점으로 서울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통과하니 길이 한결 쾌적해져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을 통과하여 구리시로 진입하는 순간 배터리가 방전돼 휴대폰이 꺼져버리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고 맙니다.


옛 철길을 공원으로 조성한 경춘선숲길. 다음에는 걸어서 산책하러 와야겠습니다.


난생처음 도착한 장소에서 휴대폰이 꺼지고, 곧 자전거도로도 끊긴 후 이상한 시골길을 마주하게 되니 당혹스러웠습니다. 가방에 휴대폰 충전기를 챙겨 오기는 했지만 주변에 보이는 건물이라곤 비닐하우스와 공장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갈길은 멀고 머지않아 해가 떨어질 텐데 하는 생각이 미치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도심지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자전거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10여 분가량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였고 단지 내에 카페에 들어가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기온이 계속해서 영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저녁에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쌀쌀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녹이기 위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포근한 카페 의자와 따뜻한 커피에 더불어 잠을 자지 못한 노곤함이 더해지니 마약 같은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고 생각했는데 휴대폰 배터리 충전량이 100%가 된 기적을 마주한 것입니다. 1시간 정도 숙면을 취한 것 같습니다. 이미 식어서 차가워진 아메리카노를 크게 두 모금 마신 후 다시 라이딩 길에 올랐습니다.


이후 라이딩의 분위기는 그전의 그것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구간과 2구간의 초반은 그래도 경치를 만끽하며 신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던 것에 반해, 휴대폰 방전 상황이 발생한 후로는 시간에 쫓기며 오직 앞을 보며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8시에 국민대에서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조금씩 빠듯해지는 시간에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또 언제 해가 떨어질지도 모르고 언제 휴대폰이 또 방전될지 모른다는 부분에 불안감을 느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에 대한 압박감에 못 이겨 이후 라이딩은 모두 오버페이스로 주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즈음부터가 후반 25km-30km 구간일 테니 적어도 20km는 제 체력 수준보다 더 높은 강도의 라이딩을 하게 된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상당한 체력소모를 불러왔고 마지막 5km 구간은 완전한 방전 직전 상태에서 주행하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오직 앞만 쳐다보며 죽어라 왕숙천을 주행한 결과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수석한강공원에 도착하며 한강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강에 도착했지만, 이미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18:00 - 20:30 3구간 [수석한강공원 - 국민대학교]


수석한강공원에 도착한 저는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본래 계획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팔당역을 거쳐 국민대로 이동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해가 지고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정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또한 밤이 되며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기온도 걱정이었습니다. 이때는 수석한강공원을 기점으로 한편으로는 팔당역 방향의 길이,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대 방향으로 향하는 길이 놓여 있었는데 한참 고민을 하다 문득 팔당역 방향의 길을 봤는데 이 길로 향하면 오늘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생각을 정리하고 국민대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판단은 옳았습니다. 하늘은 정말 급격하게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곧 밤이 찾아옴과 동시에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이에 대비해 챙겨 온 핫팩이 있었기에 양쪽 발과 허리 부분에 핫팩을 붙이고 라이딩을 이어갔습니다. 귀마개와 방한장갑도 끼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체온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팔당으로 길을 향했으면 그만큼 도착시간이 늦어졌을 테니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선 친구에게 조금 늦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그래도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힘껏 페달을 밟았습니다. 일정 초반 전체적인 체력 분배를 위해 적당한 속도로 주행하려 노력했던 부분이 무색하게 중후반부의 오버페이스는 제 페이스를 완전히 무너트렸습니다. 허벅지 근육은 학창 시절 선생님께 벌을 받던 것처럼 찢어질 듯한 자극이 오기 시작했고 라이딩이 조금씩 괴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5분만 더, 5분만 더 가서 쉬자,' '3분만 더, 3분만 더 가서 쉬자'를 외치며 라이딩은 어느새 정신력 싸움이 되고 있었습니다.


빼꼼 보이는 잠실 롯데타워.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마치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헤맨 것처럼 한참을 달렸을까요. 주위를 살펴보니 어느새 계속해서 멀리 있었던 잠실 롯데타워가 많이 가까워진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집에서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 내 몸 안에 있는 탄수화물과 지방, 물 등을 연료로 잠실 근처에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벅차거나 감격스러운 느낌은 없었지만 계획한 걸 실행에 옮겼다는 생각에 문득 스스로가 기특해지는 느낌도 잠시 들었습니다. 하면 되는구나, 가능한 거구나... 이런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네요.


그렇게 몇 분 정도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다시 조금씩 지쳐가는 몸을 일으켜 주행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남은 거리 20km.. 아니, 근데 왜 거리가 줄지 않는 것 같지? 왜 이 길은 끝나지 않는 거지? 다시 저는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서성입니다.


그렇게 한참, 슬슬 안장통이 허용범위 이상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좌골 부분에 아무래도 멍이 든 것 같습니다. 안장 위에서 이리저리 엉덩이를 움직이며 통증을 최소화하며 주행합니다.


어깨 통증은 그래도 조금 견딜만 한데, 손목 부분에 굉장히 기분 나쁜 찌릿찌릿함이 느껴집니다. 라이딩 동안 계속해서 손목이 꺾여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조금씩 그 전기 통하는 듯한 느낌이 심해집니다. 한 손으로 주행하며 다른 손을 계속해서 공중에 털어 풀어줍니다.


대퇴사두근으로 대표되는 허벅지 앞쪽이 슬슬 한계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골반과 대퇴골(넓적다리뼈) 사이, 그러니까 골반이 접히는 부분에도 근육통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장거리 라이딩에는 장요근(요추에서부터 골반, 대퇴골까지 닿아 있는 앞쪽 근육)이 개입하나 봅니다.


이렇게 몸이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며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자전거 위에서 팔다리를 흔들어 풀고, 다시 근육을 사용하고를 반복하며 어느새 목적지를 10km 남겨둔 지점에 도착합니다. 이 지점부터는 진짜 '죽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벤치에 앉아 한참 멍을 때리는데 10%나 남아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방전되어 버립니다. 두 번째 휴대폰 방전이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휴대폰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10%나 남았잖아 너...)



큰일이다. 나 여기 어딘지 모르는데. 거짓말처럼 방전에 대비해 편의점에서 사 온 1회용 보조배터리가 온도가 낮다는 이유로 (아니 무슨 군장비도 아니고) 충전이 되지 않습니다. 친구와 8시 10분까지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도 하지 못하고 길도 모르는 초유의 사태입니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자전거에 올라 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다행히도, 약간  길을 헤매기는 했지만 저녁 8시 30분 친구와 약속한 국민대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맞추느냐고 허벅지를 희생시켰습니다. 시간은 결국 못맞췄지만요..) 그리고 간절히 바랬던 승리의 마라탕 한 그릇을 해치울 수 있었죠.


이때는 알지 못했다. 이 마라탕이 불러온 재앙을.


그렇게 첫날의 67km 라이딩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축배의 마라탕이 내린 저주와 함께 다음 날이 시작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말이죠.


다음 편에서는 친구의 집에서 꿀 같은 잠을 청한 후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온 둘째 날의 라이딩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첫날보다 짧은 거리였지만 어쩌면 훨씬 더 힘들었던 둘째 날의 주행기 말이에요..


그럼,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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