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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i Sogi Jan 31. 2021

자린이의 100km 라이딩 도전기-2

Day 2 안장통, 한계, 우천

<지난 이야기>

양일간 100km의 주행을 한다는 별안간의 계획을 세우고 첫날 67km의 주행을 성공한 나. 첫날 라이딩에 대한 보상으로 먹은 마라탕 한 그릇이 다음 날 하나의 시련으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지, 오늘 나머지 거리를 성공해야 하는데...



2021년 1월 21일 (목)



08:50

"야, 나 간다. 나갈 때 이불 대충 정리하고 나가줘. 조심해서 가고!"


어, 어, 그래 오늘 하루도 파이팅이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자취방을 나서는 친구의 등에 비몽사몽 한 채 대답합니다.


[철컥, 띠리링]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 적막. 4평 남짓한 친구의 자취방 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봅니다. 잔뜩 흐린 날씨, 반쯤 쳐진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어두운 햇살이 인상적인 아침입니다. 여기에 비 소리만 들리면 자기에 딱인데.. 이불속으로 몸을 조금 더 파묻으며 생각합니다. 오늘 주행해야 할 거리는 35km로 친구 자취방인 국민대에서 출발 해 양주시 덕계동에 위치한 집까지 가야 합니다. 오후 2시 이후부터 비 소식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제 먹은 마라탕으로 인해 단단히 탈이 난 것이 문제입니다. 마라탕을 먹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속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들어가자 속이 다시 뒤집어져 새벽부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다행히 속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괜찮았기 때문에 컨디션이 크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릎 부분이 조금 뻐근하긴 하지만 통증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기분이 좋게 느껴집니다. (마치 어제 훈련에 대한 훈장을 받은 것 같은 뿌듯한 느낌이랄까요.) 좋습니다, 오늘 하루도 파이팅하고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우선 자취방이 너무 고요하고, 바닥이 따뜻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자고 출발해야겠습니다.


새벽에 먹은 교촌치킨. 마라탕 말고 너만 먹었다면 내 배는 괜찮았을까..



11:20

그러나, 늘 그렇듯 게으름은 또 다른 게으름을 낳는 따름이지요. 한번 '조금 있다가 출발하자'를 시전 하니 '조금만, 조금만...'으로 시작되는 낱말들로 점점 시간이 미뤄집니다. 결국 마치 벼랑 끝에 몰린 상황처럼 더 이상 일을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몸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2시간보다 오래 걸릴 일정이니 일정의 후반부에 비를 맞고 라이딩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는 건, 아무래도 어쩔 수 없겠네요.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바닥의 이불을 정리한 다음, 어젯밤 재워 준 친구에 대한 보답으로 가볍게 청소기를 돌려 바닥을 청소합니다. 속이 아까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점심은 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속이 이런데 과연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11:45 - 14:00 1구간 [국민대학교 - 석계역 - 의정부역]


헬멧을 고쳐 쓰고, 외투 및 옷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한 후 자전거 안장에 오릅니다. 이런, 안장에 앉자마자 무지막지한 안장통이 느껴집니다. 이것도 무릎 뻐근거림처럼 기분 좋은 훈장으로 느껴질까요? 아니, 그러기엔 너무나 날카로운 진짜 통증입니다. 마치 멍이 든 부분을 단단한 물체로 꾸욱- 누르기라고 한듯한 느낌의 통증 말이죠. 와, 이렇게 아프다고? 라이딩을 시작하며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꽤 긴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안장통에 엉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작된 라이딩, 처음 진입한 구간은 국민대에서 석계역으로 이어지는 일반도로 라이딩 코스입니다. 자전거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보행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속도를 낼 수 없어 최대한 서행하며 주행합니다. 인파가 많은 구간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자전거를 끌고 가는 행위)를 했는데 이처럼 횡단보도가 많고 사람들이 자유로이 지나 드는 일반도로의 특성상 이 구간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리는 동작들을 많이 취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다시 안장에 오를 때마다 다시금 느껴지는 안장통이 인상적인 구간이었습니다. 고통이 늘 새로웠기 때문이죠.


그렇게 안장에서 내리고, 다시 오르고를 반복하며 석계역에 도착했습니다. 원래라면 석계역에서 토스트를 하나 먹었을 것 같은데(석계역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토스트집이 있습니다) 속이 좋지 않아 먹을 수 없습니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먹는 게 땡기지는 않고, 배도 고프지 않는 그때 그 상황이 참 아이러니했던 것 같습니다. 어제 야식을 먹은 이후로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데 말이죠... 아무튼 석계역에 위치한 토스트집을 뒤로한 채 중랑천 자전거도로에 진입했습니다.



자전거도로에 진입한 후 자전거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꾸준히 페달을 밟기 시작합니다. 오늘 분명 비 예보가 있는데도 자전거도로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자전거를 타러 나온 분들도 꽤 보이구요. 이분들도 모두 나처럼 1박 2일로 해서 지금 집에 가시는 분들인가? 기어를 높이며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오후 1시경, 확실히 곧 비가 오기는 올 모양입니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날이 전체적으로 우중충합니다. 일기예보에서 서울에 2시 전후로 비가 온다고 했으니 일기예보가 맞다면 1시간 이내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전에 최대한 많은 거리를 주행해야 합니다. 핸드폰으로 남은 거리와 시간을 체크하고 약간의 오버페이스로 주행하며 나와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 13:30 - 14:00 1구간 고비 [노원구 혹은 도봉구, 혹은 그 이전 - 의정부역]


한계지점을 만난 것은 이미 10여분 전입니다. 시간당 20-23km를 유지하며 앞을 보고 라이딩을 지속하고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몸에서 에너지가 방전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운이 빠지고, 정말 미칠 듯이 힘이 듭니다. 일단 내리지 말고 어떻게든 의정부역까지만 가보자는 마음으로 앞을 주시합니다. 생각을 비우고, 묵묵히 페달을 밟습니다. 그렇게 10여분을 달렸습니다.


1km, 1km를 갱신하며 주행하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리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던가요. 핸드폰에 나오는 속도계만을 바라보며 주행하고 있습니다. 의정부역까지 5-6km나 남았다는 사실이 괴롭게 느껴집니다. 5-6km의 거리가 20km 이상의 거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5분만, 5분만 더를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귀 한쪽에는 이어폰이 끼워져 있고, 그 사이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곡 끝까지만.. 후렴부 끝까지만 일단 달려보자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눈 앞으로 익숙한 분기점이 눈에 띕니다(의정부역 부근 자전거길은 세 갈래의 분기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3여분 정도 더 주행하면 목적지입니다. 흐느적거리기 시작하는 몸을 닦달하며 목표로 했던 벤치에 쓰러지듯 앉습니다.




14:00 - 15:30 2구간 [의정부역 - 양주시 덕계동]


뭐라도 입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이온음료를 사 몸이 원하는 만큼 음료를 들이킵니다.


남은 거리는 12km 남짓. 그래도 이제부터는 평소에도 자주 주행하던 구간입니다. 문득 생활반경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습니다. 보급이 원활히 되지 않아 몸이 피곤하고 덕분에 마음도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가야겠지요. 최대한 천천히 남은 거리를 주행하자는 생각으로 다시금 안장 위에 앉습니다.



의정부에서 양주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보슬보슬 내리던 비가 점차 추적추적 그 양이 증가합니다. 다행히도 소나기 수준의 폭우가 아니라 맞으며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정부에서 양주로 진입하자 자전거도로에 인적이 끊기기 시작합니다. 왼쪽 편으로 양주시청이 보입니다. 반갑다 양주시청. 반쯤 풀린 눈으로 비틀비틀 페달을 이어 밟습니다.


너희도 나처럼 비를 맞고 있구나.. (휴식중에 만난 동물 친구들)


그렇게 가다 멈추고 쉬고를 반복하며 목적지인 덕계동에 진입하는데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다행히도 날이 춥지 않아 비는 맞을만했고 방수가 되는 외투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 체온이 유지될 수 있어 체력을 아끼며 주행할 수 있었습니다. 되뇌어보면 겨울 우천이며 보급이 되지 않은 부분이며 여러모로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의 주행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상황을 제법 쾌적하게(쾌적하게, 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을 것 같고.. 불쾌하지 않는, 이라는 표현 정도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생활반경 안에 있다는 부분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 것 같은데, 만약 같은 상황을 가령 석계역 같은 곳에서 맞닥뜨렸다면 바로 주행을 포기했을 것 같네요.


아무튼 1시간 반의 우천 주행 끝에 목적지인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비를 잔뜩 맞은 비 맞은 생쥐꼴이 되어서 말이지요. 마지막 순간, 100km의 계획을 완수했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뿌듯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저의 이틀간의 라이딩은 종료되었습니다.


주행의 마지막 순간 찍은 사진.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뿌듯함을 느꼈다.





에필로그 : 그래서 무엇을 배웠어?


가장 처음, 국토종주는 쉬운 일이 아니다. 라는 부분을 배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교훈이 아닐까 싶은데요, 1년 전 겪었던 워킹홀리데이 실패를 극복하고자 시작한 여정이니만큼 저는 이번 국토종주를 반드시 성공해내고 싶습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이 있지요, 이번 라이딩은 저에게 국토종주라는 대상에 대해 조금 더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토종주는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죠.


두 번째로, 장거리 라이딩이 가지는 특수성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사전에 장거리 라이딩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여러 번 접했었는데요. 그곳에서 말하는 정보 중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장거리 라이딩에는 변수가 많다.] 이 정보를 보다 깊게 구체화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첫날 발생한 휴대폰 배터리 방전 사건은 첫날 라이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만약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조금 더 여유롭게, 원래 계획했던 내용들을 온전히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둘째 날 겪은 복통 또한 라이딩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처럼 장거리 라이딩에는 고려할 수 없는, 혹은 놓치기 쉬운 변수들이 참 많은 것이죠. 만약 이번 라이딩을 해보지 않았다면 [장거리 라이딩에는 변수가 많다] 라는 텍스트는 단순히 당연한 소리로 취급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변수가 많겠지, 장거리 라이딩인데,'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여겼을 테지요. 저는 실제적인 변수를 겪으며 그것들이 얼마만큼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는지 몸으로 겪었습니다. 굉장한 자산을 얻은 셈이지요.


마지막으로 저에 대한, 그리고 제가 계획한 국토종주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00km 라이딩을 실행에 옮기기 전, 그리고 성취에 성공하기 전 저에게 100km 라이딩은 흐릿하고 분명하지 않은 목표였습니다. 마치 상상 속의 동물을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처럼 공허하고 쉽게 부서지는 그것이었지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나 매일 100km를 자전거로 주행해서 인천에서 부산까지 갈 거야!"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저 스스로도 그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만큼의 난이도를 가진 목표인 건지 잘 몰랐죠. 이번 라이딩은 그런 부분에 대한 어떤 인지적 안개(목표를 볼 수 없게 만드는 흐릿한 안개 말이죠)를 걷어내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저는 100km 라이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만큼의 각오로 행해야 하는 목표인지 이전보다는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결국 종합해보자면 이번 라이딩은 저에게 다가올 국토종주에 조금 더 준비된 상태로 접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거기에 부가적으로 계획한 일을 스스로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이번 라이딩을 계기로 제가 저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계획한 것을 행할 수 있는 멋진 녀석이라는 타이틀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죠 :)




그러나 국토종주를 원활히 완수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매일 100km를 연달아 며칠 주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스스로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아직은 없습니다. 훈련하고 준비하고 대비해야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어떤 형태로 진행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마찬가지로 국토종주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해요. 그럼.. 다음 시간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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