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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석 Sep 14. 2020

꿈을 묻지 않는 시대

꿈이 장래희망일까, 장래희망이 꿈일까. 꿈과 장래희망의 아슬아슬한 호접몽

“에, 여러분 잘 들리십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있는 여기 소쇄원은 양산보의 별서정원인데, 양산보는 조광조의 밑에서 학문을 닦던 선비로...”

 

학부 때 과에서 답사를 가면 해당 답사지 앞에서 교수님의 설명을 듣곤 했다. 답사지 앞에 교수님이 서서 해당 답사지에 대한 강의를 하면, 학부생들은 교수님을 빙 둘러 서서 교수님의 강의를 받아 적었다. 열성적인 학생들은 주로 가장 앞줄에서 교수님과 눈을 맞추어가며 수업을 들었고, 복학생 및 조교들, 그리고 수업에 열정을 찾지 못하는 몇몇 학생들은 라인의 뒷줄에서 마치 조례시간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듣는 학생들처럼 멍하니 서 있곤 했다. 보통 답사는 2박 3일로 진행되었는데 전날 술을 진창 마신 학생들은 숙취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답사 수업은 우리 과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 중 하나로 졸업하기 위해서는 전체 학기 중 2개 학기 이상 답사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남한 영토를 몇 개의 문화권으로 쪼개 보통 한 학기당 한 개의 문화권으로 답사를 갔는데 말이 답사지, 학생들 입장에서는 여행과도 같아서 인기가 많은 문화권(가령 제주도 답사가 가능한 탐라문화권)에 수강생들이 몰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나같은 경우는 1학년 1, 2학기에 답사를 다녀왔고(경기서부와 전라남도로 기억한다), 작년 4학년 2학기에는 제주도로 답사를 간다기에 과동기 몇 명과 3번째 답사를 갔었다.


답사를 가면 나는 늘 설명의 뒷라인에 있곤 했다. 교수님의 수업은 대체로 유익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난 라인의 뒤쪽에서 바닥을 바라보며 그저 애먼 돌멩이만 . 머릿속에는 온통 ‘오늘 저녁 언제 먹지,’ ‘숙소에는 몇 시에 들어가지,’ ‘오늘 밤에는 뭐하고 놀지,’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였다. ‘답사’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 의미가 깊은 단어였데 어린 시절 나는 엄마 손을 붙잡고 이곳저곳 답사를 다니며 역사에 대한 흥미를 키워 왔었다. 자연스럽게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는 고등학교 문과, 대학교 역사학과를 선택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런 내가 정작 학부시절 답사 수업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 답사 후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자료 출처는 글 하단에 게시)



10대 시절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크게 세 분야였다. 역사, 철학(종교학도 포함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종교를 공부하는데 많은 흥미를 가졌다. 요가를 좋아하게 된 계기도 이에 상응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스피노자), 환경(다양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 재수를 할 당시에는 가축들의 잔인한 사육방법을 막고자 동물권을 위한 단체에 가입하기도 했었다). 그중 환경 분야는 고2 시절 문과를 선택하게 됨으로써 진로와 멀어지게 되었고 역사와 철학을 두고 대학 진학을 고민하다 조금 더 오래 관심을 가졌다고 느꼈던 분야인 역사과목으로 전공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10대 시절 내가 역사에 두던 관심은 생각해보면 상당한 빈틈이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10대 시절 역사에 대한 책을 즐겨 읽은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위인전이나 읽어보았을 뿐이지, 중고등학교 때에는 학교 과정 이외의 역사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독서를 하지 않았었다. 사실 역사책을 읽는 것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역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역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은 상당 부분 가공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역사 공부를 하시던 엄마를 따라다니던 답사가 역사에 대한 내 마음에 불씨를 지핀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가 좋아한 것은 역사라는 큰 뭉텅이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를 이루고 있는 부분 부분 요소들이었다. 예를 들면 나는 역사 속 인물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관찰하는 것은 매우 좋아했지만 임진왜란이 몇 년도에 일어났고 정조가 몇 년도에 죽었고, 하는 부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역사를 좋아했지만, 역사 자체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역사라는 뭉텅이 속에서 일부를 좋아했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역사학이라는 것은 상당히 방대하고 포괄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역사학의 모든 부분을 좋아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했을 20대 초반에는 이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나도 이제 대학생이다, 라는 부푼 마음만을 알았고,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는 맹목적인 믿음만을 알았을 뿐이었다. 깊은 고민 없이 입학한 학교에서 그제야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고, 학부로부터 겉돌기 시작하며 (학점을 말아먹으며)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에게 꿈을 묻지 않는다. 이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지 않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꿈과 장래희망은 일종의 동의어이다. 즉, 장래희망이 곧 꿈이고, 꿈이 곧 장래희망인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렇지 않다. 꿈과 장래희망은 서로 다른 것이다. 꿈과 장래희망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너는 장래희망이 뭐니?"

어린 시절 위와 같은 질문을 들으면 우리는 으레 대답하곤 했다. 저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저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요! 저는 로보캅이 되고 싶어요! 이렇게. 나는 어린 시절 이렇게 대답했었다. "저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어요!"


"너는 꿈이 뭐니?"

어린 시절 위와 같은 질문을 들으면 우리는 또 같은 대답을 했다. 대통령, 연예인, 로보캅. 그리고 나의 경우는 역사학자.


그러나 불행히도 꿈과 장래희망은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가 꿈과 장래희망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할 때, 내가 앞서 언급한 나와 같은 사례가 발생한다. 장래희망을 맹목화 해 버리는 것이다.



나침반이 없던 시절, 거친 바다를 항해하던 항해자들은 북극성을 지표 삼아 그들의 항로를 잡았다고 한다. 꿈은 우리들의 인생에서, 우리의 삶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북극성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꿈은 마냥 추상적이지 않은 조금은 구체적인 목표여야 할 것이다. 또한 장래희망(장래희망이라는 단어는 단어 자체에 청소년기와 성인기를 구분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사람에게는 장래희망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을 포괄하는 조금 더 높은 차원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면, 왜 역사학자가 되고 싶은지, 어떤 역사학자가 되고 싶은지 혹은 무엇을 위한 역사학자가 되고 싶은지 말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목표 이다. 그래야 특정 직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 직업을 맹목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고 싶은 특정 직업계속해서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대학생활을 통해 느꼈던 교훈 중 하나였다.




나비 이미지 출처 : https://ko.m.wikipedia.org/wiki/%EC%A0%9C%EC%99%95%EB%82%98%EB%B9%84

소쇄원 이미지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801832&memberNo=31400626&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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