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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석 Sep 07. 2020

요가, 그거 뭐에 써먹는건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요가를 경험하다 (무서운 이야기 주의)

[글의 앞부분에 무서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하신다면 앞의 3문단은 건너뛰고 읽어주세요.]


지금으로부터 3년 반 전, 육군 모 부대에서 병사로 복무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야간에 공부연등(병사들이 취침에 든 시간에 희망자에 한하여,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취침하지 않고 공부를 하다 잘 수 있도록 한 제도)을 마치고 취침을 위해 생활관에 들어갔었다. 평소와 다른 점은 그날따라 유난히 많은 비가 내렸다는 점과 병사 한 명이 그 캄캄한 생활관 안에서, 취침하지 않고 관물대 앞에 선 상태로 관물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밖에는 없었다. 피곤에 절어 있었던 나는 왜 안 자고 저기 저러고 서있대,라고 가볍게 생각한 후 잠에 들었고 다음 날 일어나서 예상치 못한 사실에 아연실색하였다. 생활관에서 취침에 든 사람 중 전날 밤중에 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었다. (더불어 불침번에게 물어본 결과 전날 밤 나를 제외하고 생활관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


사건은 이후 하나의 무서운 해프닝으로 종료되었고, 병사들 사이에서 군대괴담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내가 앞장서서 퍼트렸다. 무서우니까....) 특이할만한 점은 그 사건 이후 한동안 생활관 인원들이 이유 모를 어깨 통증을 호소했었다는 점. 마치 누군가 어깨 위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 전우도 있었는데, 그 이후 나는 한동안 공부연등을 하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서.....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그런 무시무시한 귀신의(?) 후유증(어깨통증)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이유는 당연했다. 나는 평소에도 생활에 지장이 갈 만큼의 어깨 통증을 달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호소하는 잦은 통증들의 시달림을 많이 받아 왔었다. 그중 어깨 통증은 20대 중반에 들어설 무렵부터는 일상적인 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해졌었는데, 그때부터 몸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즈음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이었고, '아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몸이 박살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도 얼핏 난다.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보던 중 한 지인으로부터 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후 요가에 깊이 빠져들며 요가의 재미에 눈을 뜨게 된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어떻게 그렇게 단기간에 요가에 깊게 빨려 들어갈 수 있었는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어쩌면 그건 아마 당시 내가 절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은 살기 위해 손에 잡히는 그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잡으려 하지 않는가? 나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내가 보기에 요가는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일종의 '지푸라기'처럼 비쳤을 것이다.


되뇌어보면 처음 요가를 접했을 때는 실제로 정말 절박하게 요가에 매달렸던 것 같다. 하루를 마감하고 통증에 절어 있는 밤에는 통증을 지우고 재우기 위해 요가를 했고, 일정이 빡빡할 것으로 예상되는 날 아침에는 통증 없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기 위해 요가를 했다. 학교 수업을 듣다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하면 유튜브에서 배운 어깨 푸는 요가 동작들을 했고, 길을 걷다 몸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몸을 풀 수 있는 요가 동작을 했다. 그렇게 통증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요가에 빠져들었고 다행히도 요가를 하는 순간순간만큼은 그 통증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Yogas citta vrtti nirodhah  요가는 마음의 동요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요가수트라 1장 2절




그렇게 요가를 접한 지 햇수로 3년. 통증에 대한 정복을 기대하고 시작했던 요가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그 싸움은 현재진행중이다. 실제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도 나의 오랜 친구(혹은 적인가..?), '어깨 통증'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고 있으니까. 다만 요가를 시작하고 이전과 비교해서 확연히 바뀐 부분은 통증을 바라보는 나 스스로의 관점인 것 같다. 요가를 시작하고, 몸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내 몸에 대한 관찰을 지속적으로 했기 때문일까? 이전에는 그저 '공포'로 인식되던 고통들이 지금은 "아 내 몸이 지금 많이 피곤한가 보구나,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겠다."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통증이 일종의 몸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예전처럼 마냥 거북하지 않고,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조금은 귀 기울일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느 따분한 여름날, 회중시계를 쳐다보는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앨리스는 몸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등 비일상적이고 말 그대로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나는 우리가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할 때 그 일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이 이상한 나라에 처음 들어간 앨리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모두 비일상적이고 조금은 이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어제로 돌아갈 수 없어. 왜냐하면 지금의 난 어제의 나와 다르기 때문이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한 말이다. 나는 3년 전 우연한 계기로 요가라는 이상한 나라에 뛰어들었고 그 이후 내 삶은 내가 의도한 결과이던, 그렇지 않은 전혀 생뚱맞은 결과이던 상관없이 변화하였다. 그때와 다름없이 나를 괴롭히는 몸의 통증들(그렇다고 통증의 정도가 심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 여전하거나, 분명히 조금은 줄어들었다.)이 아직도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요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앨리스가 별 이상한 일을 다 겪으면서도 위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연한 계기로 나는 이 길에 뛰어들었고 이 길을 걸으며 나는 변화했노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통증타도'라는 어쩌면 모호하기도 한 슬로건을 휘두르며 길을 걷는 동안,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얻은 것들이 참 많은지도 모르겠다. 운동하는 습관, 나를 관리하는 방법, 밤새 공부한 해부학 노트, 사설 지도자 자격증, 운동과 몸에 대한 향상된 지식, 체대수업을 듣는 용기, 인도철학에 대한 이해 등등.. 이것들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길 위에서 내가 얻은 것들이고, 그중 운동하는 습관과 나를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이기도 하였다.


혹 이 글을 읽으며 요가에 대한 관심이 피어오르거나 마음속에 간직했었던 어떤 도전에 대한 욕구가 솟아오른다면 기꺼이 그 길을 걸어보라, 라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또 이상한 요가나라의 석이처럼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미래에 얻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그 길은 은밀히 간직하고 있을지 모른다. 발을 내디뎌보라, 그리고 그 세계에 깊이 젖어보라. 새로운 도전에 응하는 여러분들을 응원한다.



사진출처 : https://1boon.kakao.com/linkagelab/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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