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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24. 2020

아직 마스크를 써 보지 못 했습니다

오늘 아이가 다니는 소아과에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Personal Protection Equipment (PPE), 번역하자면 '개인 보호 장비'를 제대로 공급 받지 못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개인 보호 장비에는 N95마스크, 수술용 마스크, 고글, 안면 보호대, 가운, 글러브 등이 있다. 병원에서 환자 진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기도 한데, 이들 물품이 현재 부족한 데다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혹시라도 가족 중에 의료업, 미용업, 건축업, 도장업 종사자가 있다면 보유 중인 개인 보호 장비를 본 병원에 기증 또는 판매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하고 있었다. 


인근의 소아과에서 받은, 마스크 등의 기부를 요청하는 이메일.


수중에 N95 마스크가 있다면 당장 가져다 주고 싶지만,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견된 이후 우리 부부가 마스크를 사려고 시도했던 날은 정확히 2월 2일이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이 수퍼볼 경기 당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우한시 교민들이 전세기로 귀국하여 격리되어 있었고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한편 미국은 소수이긴 하지만 확진 케이스가 간헐적으로 보고되고 있었다. 그래서, 마스크를 준비해 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문득 스쳤더랬다. 위기감은 없었다. 그냥, 만일을 대비하여, 준비해 둬야겠지? 하는 긴가민가한 마음이었다. 수퍼볼 중계를 보면서 남편은 아마존 사이트를 검색했다. 그러곤 말했다. 마스크가 없다고.


나는 귀를 의심했다.


"마스크가 없다고?"

"응. 전부 품절이야."

"...... 왜?"


아니, 여기서 지금 누가 마스크를 쓴다고? 다음 날 나는 직접 편의점과 마트를 찾았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놀랍게도 두 곳 모두 마스크는 품절이었다.


미국인의 마스크 미착용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미국에서 마스크는 아픈 사람만 사용한다, 미국인은 청정 지역에 살아 마스크에 익숙하지 않다, 정부에서 건강한 사람에겐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았다, 등등.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장 일차적으로, 애초부터 마스크가 별로 없었다. 정부가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도 수급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먼 나라 중국의 것이고 국내 확진자는 일부 몇 개 주(州)에 겨우 한두 명뿐일 때에도 미국에서 마스크는 품절이었다. 착용하고 싶어도 착용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하고도 보름이 경과하는 동안 상황은 급속히 전개되었고, 아이의 학교는 긴급 휴교를 하기에 이른다. 휴교가 공지된 바로 다음 날, 마트는 붐비었다. 그러나 그 많은 이 중 마스크 착용자는 직원들과 소수의 고령자, 소수의 동양인뿐이었다. 직원들은 고융주로부터 마스크를 지급 받았을 테고, 고령자와 동양인은 이미 마스크를 보유하고 있었거나 마스크를 조달할 별도의 경로가 있었을 테다. 그럼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나머지는? 쓰고 싶어도 못 쓴 거다. 나도 역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였다. 장은 봐야 하는데 아이를 집에 홀로 둘 수는 없어서 아이도 데리고 갔더랬다.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씌우지 않은 채로. 직원은 우리에게 카트를 건네기에 앞서 살균용 티슈로 손잡이를 꼼꼼히 닦아 주었고, 계산원은 아이에게 영수증을 건네며 집에 돌아가면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미국 아줌마 특유의 다정한 말투로 당부하였다. 


얼마 후 외출 자제령(shelter in place)이 내려지고 6피트 이상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남편 역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는데, 그와 동시에 한국인 동료에게서 귀하디 귀한 마스크를 세 장이나 받아 왔다. 어렵사리 구한 KF94 마스크를 우리 가족을 위해 식구 수대로 나누어 준 것이다. 남편이 처음 마스크를 내밀어 보였을 때 나는 '아, KF94가 이렇게 생겼구나'하며 들여다보기만 했다. 현재 우리 가족의 KF94 마스크는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고이 모셔져 있다. 대신 옷장을 뒤져 보니 아이가 예전에 쓰던 천마스크가 아직도 있길래 그것만 아이에게 씌우고 있다. 아이는 천마스크를 쓰고 남편과 나는 그마저도 쓰지 않은 채로 잠깐씩 산책을 나가 보면 요즘 거리는 텅텅 비어 있다. 그러므로 6피트 이상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별다른 노력 없이 준수되고 있고, KF94 마스크는 추후에 뜯어도 아직은 괜찮을 듯하다. 어쩌다 거리에서 사람을 보아도 그 쪽 역시 마스크는 쓰지 않고 있다. 당연하다. 병원에도 없다는 마스크를 어디서 구하겠나? 정 많고 수완 좋은 누군가가 선물해 주지 않는 이상.


정부 주도로 국민에게 마스크를 제공하는 한국의 대응은 훌륭하다. 어디 그뿐인가. 신속한 검사와 의료진의 헌신까지 칭찬하자면 끝이 없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한국 기사를 읽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한국에 전해지는 미국 관련 뉴스도 읽게 된다. 어떨 때는 댓글까지도. 미국의 코로나 확산에 대해 "마스크도 안 쓰고 다니더니 ㅉㅉㅉ" 하고 반응하는 댓글들을 보고 있자면 내 나라 욕도 아닌데 괜히 안타깝다.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는 게 아니라, 쓰고 싶어도 못 쓰는 것임을 직접 겪었으니까.


그렇다면 미국에서 마스크는 왜 진작부터 품절이었을까? 중국계 이민자들이 대거 사재기하여 자국으로 일찍이 빼돌렸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나로선 팩트를 확인할 길이 없다. 분명한 건 미국에 마스크가 모자라다는 것이다. 동네 소아과에서도, 스탠포드 대학 병원에서도 마스크 기부를 요청할 정도로. 이제 이곳에서 건강한 사람이 마스크를 구입하여 착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를 넘어 이기적인 행위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의료진도 구하지 못하는 마스크를, 노약자에게도 모자라는 마스크를, 그렇게 기부를 요청했는데, 왜 당신이, 왜, 하면서.


의료 물품 기부를 요청하는 스탠포드 대학 병원의 웹페이지




다시 오늘, 한국 친구에게서 카톡을 받았다. 미국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고,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고. 나는 마스크가 세 장밖에 없어서 아끼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그동안 쟁여둔 마스크 여분이 좀 있다며 내게 보내주겠다고 했다. 


마스크를 보내주겠다니.

한국에서도 여전히 모자랄 마스크를, 

내 가족도 내게 보내주려 한 적 없는 마스크를,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고 조카도 있고 노부모도 있는 애가,

바다 건너 나에게 마스크를 보내주겠다니.


정말 정말 고맙다고 답했다. 계속 쟁여두었다가 한국에서 코로나가 종식되어 마스크가 남아돌면 그때쯤에 보내달라고 청했다.


오늘 저녁 남편이 말하길, 코로나는 지겹도록 미우면서 어딘가 따뜻한 데가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휴머니즘'이 있다고. 


마스크를 나누어 주거나 나누어 주려는 사람들, 
휴교 기간 동안 학생들을 위하여 서툴지만 알차게 유튜브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 
고위험군과 고령자만 출입하도록 전용 시간을 할당한 수많은 가게들, 
마스크를 판매하는 온라인몰이 생기면 구매가 아닌 규탄을 하는 동네 맘 커뮤니티, 
매출이 부진한 요식업계를 돕고자 수수료를 인하한 배달업체, 
휴교된 아이들을 위해 키즈 콘텐츠를 무료 제공하는 인터넷 업체. 
그리고 이미 잘 알려진 한국의 여러 가지 사례들.


조만간 한국에 코로나가 종식되어 정말로 친구에게 남아도는 마스크를 받게 된다면, 기쁘면서도 여전히 긴가민가할 것 같다. 도대체 몇 장을 킵하고 몇 장을 기부해야 하는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정말 어떤 놈인지, 여태도 잘 모르겠고, 그 놈을 예방하자고 마스크를 써본 적도 없어서, 아직 도무지 모르겠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Folco Mas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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