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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r 29. 2020

어설픈 원격 수업은 사랑입니다

휴교 중인 미국 초등학교의 온라인 수업

l Distance learning의 의미는

a method of studying in which lectures are broadcast or classes are conducted by correspondence or over the Internet, without the student's needing to attend a school or college. Also called distance education. (Source: Oxford Dictionary)

(번역) 원격 수업: 학생이 학교나 대학에 출석할 필요 없도록 강의를 방송하거나 인터넷 또는 서신을 통하여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 원격 교육이라고도 한다.


ㅣ내 어설픔을 보고 웃으세요

코로나19로 인해 아이 학급의 원격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구글 클래스룸 화면이다. 


구글 클래스룸 과제 화면. 지시사항과 함께 영상이나 자료가 첨부된다.


"영상에서 선생님을 보며 웃고, 닭의 그림에 부위별 명칭을 적은 뒤 사진을 찍어 제출하세요."


도대체 뭘 하시길래 자길 보고 웃으라고 하나, 하고 아이와 함께 링크를 따라가 보니 자기 마당에서 기르는 닭을 안고서 닭의 볏(crest), 턱볏(wattle), 꼬리, 날개를 가리키며 생김새를 설명해 주신다. 닭은 선생님의 품을 빠져나가려고 자꾸 버둥거리는데 선생님은 "괜찮아, 괜찮아"하고 쓰다듬어가며 슬며시 닭의 날개와 발톱까지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자 닭이 꼬꼬댁거리기 시작한다. 이제야 꼬꼬댁거리다니 은근히 순한 닭이다. 닭이 꼬꼬거릴 때마다 선생님은 미소를 만면에 띄운 채로 "괜찮아, 괜찮아" 한다. 선생님은 그런 식으로 닭을 두 마리 더 보여 준다. 닭마다 생김새와 털의 빛깔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면서. 어떤 닭은 선생님의 남편이 동원되어 들어 안았는데 닭이 푸드덕거려도 웃기만 하던 선생님과 달리 남편 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목소리만 등장하여 설명을 이어가는 선생님의 음성에 웃음기가 묻어 있다. 


잠시 후, 선생님과 화상 미팅이 있다. 화상 미팅은 일주일에 세 번으로, 한 번 할 때마다 학생 다섯 명과 선생님이 참여한다. 25인 학급이므로 아이들을 다섯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셈인데 아이들이 친구들을 고루 만날 수 있도록 그룹 구성도 매번 변경된다.


내 아이가 제일 먼저 접속하고, 이어 다른 한 아이, 그리고 선생님이 접속하여 화면에 등장한다. 나머지 세 아이를 기다리며 선생님이 묻는다.


"아직 잠옷 입고 있는 사람?"


내 아이와 선생님이 손을 들고, 다른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선생님이 말한다.


"그래도 나 이는 닦았어."


그러자 내 아이가 말한다.


"나도 이는 닦았어요."


나는 '나는 이도 안 닦았어요' 하고 끼어들려다가 참았다. 선생님과 학부모의 미팅이 아니라 선생님과 아이들의 미팅이니 그들만의 것으로 두어야 할 것 같아서.


어쨌든 나는 정말로 이도 못 닦고 아침밥도 못 먹은 상태였다. 온 가족이 늦잠을 잤다. 일어나자마자 아이의 아침밥을 챙겨주었고, 재택근무하는 남편은 기상과 동시에 화상 회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전날 저녁 씻어 말려 놓은 그릇들을 제자리에 옮겨 놓곤 과일을 잘라 두 접시에 나누어 담아 하나는 아이의 아침밥 옆에, 다른 하나는 남편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곤 방마다 블라인드를 활짝 열고 침대를 정리하고는 간밤에 구글 클래스룸에 업로드된 과제물을 출력했다. 출력된 종이 뭉치를 들고 오늘은 무슨 내용인가 하고 들여다 보는 사이에 아이가 양치까지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가 과제를 하기 시작했다. 원격 수업이 처음 시작되던 날, 나는 아이가 과제를 하는 동안은 나도 내 일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더랬다.


그건 마치, 신생아는 잠만 자니까 산모도 그냥 자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처럼, 아주 당치 않고 헛되고 무식한 착각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워크북 한 장을 풀면서도 질문이 오만 가지다.


"엄마, 이거 답을 이렇게 썼는데 이거 맞아?"

"엄마, 아까 동영상에서 선생님이 말한 그 뭐더라, 그 크레스트? 그건 스펠링이 뭐야?"

"엄마, 이거 색칠도 해도 돼?"

"엄마, 지웠다가 이렇게 다시 썼는데 괜찮아? 아까 틀리게 쓴 거 웃겼지?"

"엄마, 여기 내 글씨 있잖아, 이거 내가 지금까지 쓴 글씨 중에 제일 잘 쓴 거 같은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모든 질문에 답을 하고 완료된 과제물을 사진으로 찍어 제출하고 나니 미팅 시간이 되어 그때껏 밥도 못 먹고 이도 못 닦은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밥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양치는 아이의 미팅이 끝나고 아이가 잠시 휴식을 하는 동안 후다닥 해치웠다.


ㅣ문제는 네가 아니라 나

다음 과제는 식물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지시문대로 색칠을 하는 것이다.


미국 초등학교 1학년의 원격 수업 과제. 휴교 직후 학교에서 수령해 온 워크북과 담임 선생님이 구글 클래스룸에 업로드한 자료를 중심으로 부여된다.


잎은 영양분을 합성하고, 뿌리는 수분을 흡수하면서 식물의 몸체를 땅에 고정하고, 줄기는 뿌리에서 다른 부위로 수분을 운반한다. 그리고 꽃은 씨앗을 생성하는데, 아이는 어떻게 잎이 영양분을, 어떻게 꽃이 씨앗을 만들어 내는지 이해하지 못하여 둘의 역할을 자꾸만 헷갈려 했다. 그리하여 나는 여러 장에 걸쳐 그림을 그려 가며 광합성의 원리와 식물의 수정 과정을 설명하기에 이른다.


설명을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아이의 질문에 나는 내가 듣고 자란 말들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알아서 대충 하지 뭘 그리 꼬치꼬치 물어.
그런 것까진 몰라도 돼.
거 참, 꽤 못 알아 먹네.
이러니 제 자식은 제가 못 가르친다지.


나는 아이의 질문에 말문이 막힐 때마다 초등 1학년이 알아들을 쉬운 말과 쉬운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지만 원인은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아이는 물을 만한 것을 물을 뿐이었고, 나는 아이를 이해시킬 언어를 모르고 있었다.


아이: 꽃이 씨앗을 만든다고? 꽃가루가 씨앗이야?

나: 아니.

아이: 그럼 꽃가루는 뭘 해? 벌이 먹는 거야?

나: 먹기도 할 텐데 벌은 꿀을 더 좋아할걸? 벌이 꽃에서 꿀을 빨아 먹다 보면 꽃가루가 어떻게 될까?

아이: 벌이 꽃가루도 먹어.

나: 어... 어... 먹기도 하겠지. 근데 먹는 거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해 보자. 네가 벌이라고 해 봐. 꽃에서 꿀을 빨아 먹다가 너무 너무 맛있고 신나서 꽃 위에서 방방 춤을 췄어. 근데 꽃 위에 있다 보니 주변이 온통 꽃가루야. 그럼 꽃가루가 너한테 어떻게 될 거 같애?

아이: 내 입으로 들어와.

나: 어... 입에 들어갈 수도 있지. 근데 입에만 들어갈까?

아이: 몸에도 묻어.

나: 그치! 몸에도 묻지! 꽃가루가 벌의 몸에 묻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아이: 벌이 싫어해.

나: 아... 벌은 꽃가루가 묻든 말든 별로 신경 안 써. 그냥 묻은 채로 또 다른 꽃으로 꿀을 빨아 먹으러 갈 거야. 그럼 벌한테 묻은 꽃가루가 어떻게 될까?

아이: 바람에 날아가.

나: 그치...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지... 근데 날아가지 않고 남은 꽃가루는 어떻게 될까?

아이: 다른 꽃에 떨어져?

나: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바람이나 벌이 꽃가루를 옮겨줘서 여자 꽃가루랑 남자 꽃가루가 만나면 꽃에 씨앗이 생기는 거야.

아이: 오... 그럼 꽃잎은 뭘 해?

(중략)

아이: 근데 꽃이 제일 위에서 햇빛 많이 보는데 왜 영양분은 잎이 만들어?


그렇게 엽록소와 광합성까지 설명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이후 수학, 읽기, 쓰기 과제까지 (그리고 아빠가 만들어 준 파스타로 점심 식사도) 마치고 독서록을 작성한 뒤 공놀이와 체조와 숨바꼭질로 머리를 식히고 나서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까 본 식물 동영상 있잖아. 엄마는 이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가르쳐 줄 수 있어?"


아이는 자기가 다 가르쳐 주겠다며 신이 나서 마커를 들고 칠판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식물의 부위별 역할을 설명하려는 아이의 1차 시도


까만 글씨로 꽃, 잎, 줄기, 뿌리라고 써 놓고 뿌리와 줄기까지는 올바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꽃과 잎에 대해서는 종전처럼 여전히 헷갈려 하는 거다. 어릴 적의 내가 그랬다면 '가르쳐 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핀잔을 들었을 테지만 나는 그냥 "나중에 생각나면 알려줘" 하고 말았다. 기억을 잊었다고 아이를 타박하고 싶지도, 계속되는 식물 이야기로 아이를 질리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식물은 다시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는 저녁 식사 후 스스로 칠판 앞에 앉아 꽃 그림을 그렸다.


식물의 부위별 역할을 설명하려는 아이의 2차 시도


내가 장황하게 설명한 광합성과 수정에 대한 디테일은 빠져 있었지만, 잎은 햇빛을 받아 영양분을 만들고 꽃은 꽃가루로 씨를 만든다고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욕심을 내자면 내가 디테일을 추가해 재차 일러줄 수도 있었겠으나 종일 공부한 아이를 위해서도, 욕심을 버리려는 나를 위해서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욕심을 버리니 조바심이 줄고, 조바심이 줄어드니 인내심이 늘어난다.


ㅣ고마운 무게들

양치는 했지만 아직 잠옷 차림이라던 아이의 선생님은 자신의 두 아이가 뛰어 돌아다니는 가운데(선생님의 남편은 직업 상 여전히 출근한다고 한다) 학생들과 미팅을 이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제대로 정해진 일과표도 아직 없어. 내 애들을 돌보며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그건 너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거야."


선생님은 원격 수업이 처음이고, 아이는 식물에 대해 처음 배웠고, 나는 초등생에게 식물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처음이라 모두가 어설펐지만 '거 참, 꽤 못하네' 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어설프든 상대가 어설프든 괜찮았고, 내가 어설퍼서 상대가 웃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웃어주기를 바랐다. 


선생님은 "영상에서 선생님을 보고 웃으라"고 했고, 
아이는 자신의 틀린 답안에 내가 웃기를 바랐으며, 
나는 '나는 아직 이도 안 닦았다'고 말해 아이들을 웃게 해주고 싶었다. 
자신을 높이 세우려는 조바심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면서 가짜 무게를 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욕심을 내려 놓은 사람들에겐 진짜 무게가 있다. 나의 어설픔을 드러내고 너의 어설픔을 품어주는 용기의 무게. 유례 없는 불안에 흔들리기 쉬운 요즘, 무게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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