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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May 15. 2021

결국, 아이는 먼저 엄마에게 다가와 안긴다


귀가 찢어질 듯 추운 날이었다. 남편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된 날, 아이가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아이는 곧 쓰러질 듯 숨을 헐떡이는데 도움을 구할 곳이 없었다.

"이 근처 소아과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가는 곳으로 가주세요."

택시를 타고, 한 시간을 기다려서 진료실로 들어섰다.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는 "엄마가 많이 놀라셨겠어요."였다. 그리고 차가운 청진기를 자기 손으로 한참 동안 감쌌다. 그렇게 따뜻해진 청진기를 아이의 심장에 살짝 올려놓았다.

아이가 세 돌을 넘기니 소아과에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세 돌까지는 아이의 몸을 키웠다면 세 돌부터는 아이의 마음을 키워야 했다. 미운 4살이었다. 콩나물 된장국에 콩나물이 빠졌다고 밥을 안 먹고, 청소기로 과자 부스러기를 정리하면 청소기가 자기 과자를 먹었다며 울었다.

바쁜 아침시간 엘리베이터 버튼을 엄마가 눌렀다고 30분을 울었다. 시계가 8시 25분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30분이 넘어가면 단호함을 가장한 협박으로 아이를 달래기도 했다. 추운 겨울날 열이 40도 까지 나는 아이를 안고 병원문을 두드린 엄마에게 "진작 안 오고 뭐하셨어요, 이러다가 아이 큰일 납니다."라는 협박은 마음을 상하게 할 뿐이다. 나는 아이에게 "많이 속상하지?"라는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네는 엄마였을까 생각해본다.

아이에게 화가 잔뜩 나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저기 구석에서 엄마 눈치를 보는 아이의 눈빛이 느껴진다. 지금 저 아이에게는 귀가 찢어지게 추운 날 택시를 타고 달려갈 곳이 없다.

남편과 엄마에게는 조그만 일에도 짜증을 낸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아무리 화를 내도 아이는 결국 엄마에게 먼저 다가와 안긴다.

내 아이를 직장상사라고 생각하고 대한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다. 나의 감정을 직장상사에게 표현하듯이 거름종이에 한번 거르고 표현해 보는 연습을 한다.

강 팀장님 왜 말을 그따위로 하세요? 가 아닌
강 팀장님 그렇게 말하니 저도 속상하네요.

범준아, 왜 동생을 때려, 왜 그래? 가 아닌
범준아, 사이좋게 지내야지

나는 아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먼저 건네는, 따뜻한 청진기 같은 엄마'로 기억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마음이 귀가 찢어질 듯이 추운 날에 엄마에게서 따뜻한 청진기 같은 위로의 말을 기대해하며 나에게로 와준다면 참 고맙겠다.   



강과장님, 한시간을 가르쳐드렸으면 '우유'는 읽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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