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새로운 가족을 들였습니다
내 이름은 친척 언니의 이름과 똑같다. 성도 이름도 똑같은. 그래서 내 이름을 지을 때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촌이 많이 싸웠다고 했다. 한자 뜻은 다르지만 한글로는 같은 이름. 아버지는 그저 이 이름이 더 이쁘고 마음에 들어서 이 이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사촌언니와 똑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철학, 관상, 사주 같은 것 따위를 좋아하시던 어떤 어른은 내 이름의 한자를 보고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는 잘 쓰지 않는 한자라거나, 인생이 순탄하지 않은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어릴 때는 이런 말에 내 이름은 크게 고민이 없이 만들어진 건가, 아니면 이름 때문에 내가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뭐 태어날 때부터 이름을 가지고 사촌 언니네 가족과 기싸움을 했으니 시작부터 썩 순탄하지 않았던 삶은 맞는 것 같다.
덕분에 가끔 내 이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왜 할아버지는 우리 항렬의 돌림자를 최고로 좋은 금도 아니고, 쓰임이 많은 동도 아니고 애매한 은(銀)으로 골랐을까. 덕분에 나는 최고도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못나지도 않은 중간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나는 어릴 적부터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반에서 한 명 밖에 없는 이름이라거나, 푸름, 하늘, 가람, 사랑, 진실처럼 기억에 잘 남는 한글 이름이 특히 부러웠다. 그에 반해 내 이름은 너무나 흔해서 같은 학년에는 네댓 명, 심지어 같은 반에도 늘 같은 이름의 친구가 있었다. 만약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이름이 지어졌다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일요일 오후가 되면 나는 도서관에 들려 책을 빌리고, 근처 작은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오늘 내 손에 들린 책은 백수린 작가님의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SNS를 돌아다니다 누군가가 추천해서 언젠가 읽어봐야지 하고 벼르던 책이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작은 동네에서 자신의 인연들과 조용히 하지만 삶을 찬찬히 느끼며 살아가는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니 하루를 느끼고, 계절을 느끼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내 삶이 조금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한다고 하면서 화분에 씨를 뿌리고 돌보는 작가님의 모습에 내 집에도 가족을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집에 식물을 들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날이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우리 집에는 베란다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빨래를 널어두는 세탁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그저 비어있다. 그래서 그곳에 식물을 들이고 싶었다. 그런데 6층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아파트인 우리 집에 식물이라니. 다음 이사를 갈 때를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우리 집에 식물이 들어올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오늘 작가님이 책을 읽다 책상 위에 작은 식물이라도 들이자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 들렀다. 3년째 살고 있는 동네에서 항상 지나가기만 했던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꽃집의 사장님이 까칠하고 조금은 불친절한 남자분이신 것은 또 반전이었다.
사장님께 기르기 쉬운 식물을 물어보니 금방 '칼라데아 비타타'를 추천해 주셨다. 햇빛을 많이 받지 않아도 되고, 물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나 같이 게으른 초심자가 키우기 좋은 식물이렷다. 더군다나 실내 공기 정화에도 좋다니, 나에게 딱 맞는 식물이 아닌가.
그렇게 내 집에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다.
새 가족이 집에 들어왔으니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당연한 순서인데 나는 아직도 이름 짓기를 망설이고 있다. 내 이름이 갖기를 바랐던 것처럼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친구가 다른 식물을 만나 자신의 이름에 대해 떠들게 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자신의 이름은 특별하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