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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25. 2023

예순 살, 음악 치료사가 되다.


곱디고운 어머니 한 분이 레슨을 받으러 꾸준히 오셨었다.

반주도 멋지게 하고 싶고 트로트도 잘 치고 싶은데 동요까지 잘 치고 싶으시다는 것이다.


"오~ **님, 하고 싶은 게 많으시면 좋죠! 하나씩 한 번 해볼게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가지고 오셨다. 제본된 악보집이었는데 그 안에는 장르 불문, 모든 시대 음악들이 다 섞여 있었다. 정말 옛~~~ 날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부터 요즘 아기 상어 노래까지 말이다.


사실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이 책을 마스터하면 엄청난 결과 값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님, 이 책이 어디서 전해 내려오는 그런 비밀이 담긴 책.. 같아요!!!"


"선생님 사실은 제가 음악 치료사를 하고 싶은데 반주가 안돼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이걸 받아왔어요."


"음악치료사요??"(학부를 말씀하시는 걸까, 석사를 말씀하시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자격증을 말씀하시는 걸까!!!)


"네, 이화여대나 숙명여대는 좀 어려울 것 같고, 명지대 한 번 도전해 보려고요."


"석사 말씀하시는 거세요??"


"네, 어디서 좀 배웠는데 도통 늘지 않아서.. 지금 급하게 선생님을 찾은 거예요."



세상에 마상에. 


시험 날짜를 보니 얼마 남지도 않았다. 반주는 워낙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하나의 리듬만 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정곡이 있어서 하나만 달달 외워서 치는 입시도 아닌 것이다.


그러면 이 어머니께 나는 무엇을 가르쳐 드릴 수 있는가!! 고민에 빠졌다.


어릴 적 아빠 차에서 흘러나왔던 음악들을 되뇌었다.

얼스 윈드 앤 파이어, 아바, 카펜터스, 케니쥐부터 비틀스 등등 팝송부터 차근차근 찾았다.

유치원 선생님인 언니에게 SOS를 쳐서 요즘 많이 부르는 동요 목록을 뽑았다.


희한하게 그 어머님이 가지고 온 그 제본 악보집에 이 노래들이 80% 이상 들어 있었다는 것!

좋다. 이 책으로 일주일에 못해도 7곡 이상은 연주해야겠다. 다짐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어머님은 너무 좋아하시면서도 어렵다고 힘들어하셨다.




대망의 입시날이 다가왔고 어머니는 후회 없이 잘 본 것 같다며 결과가 어떻든 만족하겠다 하셔 놓고서

합격하셨다.


학교 합격 후에도 어머니는 치료사로 나가기 전까지 클로이재즈에서 함께 수업하셨다.

학교에서 하는 과제들은 생각보다 어른들이 하기시에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같이 동영상도 만들고, 


음악 치료사로서 멋지게 활동하시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던 어머니.

무언가를 도전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 싶은 생각이 처음으로 짙게 들었던 경험이었다.


잘 지내고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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