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일곱 시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남편이 없다. 어디 가는 거지? 전화를 했더니 집 근처 공원에 간단다. 예전에 내가 그랬다. 자는 남편 두고 혼자 새벽에 공원에 나가 걸었다. 이제는 바꿨다. 나는 자고 남편은 아침잠이 사라졌다. 눈 뜬김에 같이 가자고 했다. 출근 시간보다 이르게 서둘러 움직였다.
공원 한 바퀴를 크게 돌고 시장에 갔다. 아침에 먹을 족발과 (남편이 족발을 좋아한다) 달걀도 한판 사고 내가 마실 커피도 주문했다. 이미 만보가 넘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홉 시 반인데 아이들은 아직도 한밤중이다.
아침 먹을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깨웠다. 오늘은 별 다른 일정이 없다. 이제는 어디 가려고 해도 예전만큼 환호받지 못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험기간이라 예의상 집에 머물기로 한다. 방콕 하면 내가 제일 편하다.
각자 할 일을 했다. 나는 거실 테이블에서 책을 펼쳤다. 글쓰기 대신 블로그에 서평을 남겼다. 내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서 과자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주전부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냉동실에 있는 초콜릿도 꺼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다.
학원에 다녀온 큰딸이 배가 고프다며 대뜸 라면을 먹는다고 한다. 사실 아이가 오기 전에 먼저 라면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웬일로 텔레파시가 통했나 싶다 했다. 못 이기는 척 대신 라면 먹고 줄넘기하기를 권했다. 다음 달 시험이라는 이유로 학교와 학원만 오가며 책상 앞에만 붙어있다. 체력이 안 돼서 잠이 그렇게 오나 싶기도 하고 저녁을 먹으니 또 배가 부르다.
작정하고 노트북을 외면했다. 대신 예능 프로를 보기로 했다. 한때 런닝맨 애청자였다. 글을 쓰기 전에는 매주 챙겨봤다. 그 시간에 맥주를 마시며 일주일 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보상의 시간이기도 했다. 같은 시간 런닝맨을 보고 있지만 예전의 나와는 사뭇 다르다. 눈은 텔레비전을 뚫어져라 보고 있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술을 못 마셔서가 아니라 글을 쓰지 못해서. 그냥 쉬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오늘 나를 돌본 하루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로 채운 하루.
남편과 걸으며 일상을 나누고, 책장을 넘기며 몸도 마음도 쉬었다. 오늘이 아니면 못 먹을 듯이 먹고 싶은 음식들로 배를 채웠다.
바쁜 일상 속, 이런 날은 필요하다. 아무것도 한 듯 안 한 듯 그 속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걷기와 글쓰기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겼다. 쓰던 원고를 펼치지 못해 아쉬웠지만.
계획 없는 하루, 특별히 무언가를 한다기보다 평소 하던 대로 움직였다. 나는 걷고, 읽고, 쓰고 있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인 하루가 한 편의 글로 남겨졌다. 몸은 쉬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글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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