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나니 30분 남았다. 텀블러를 챙기고 빽다방으로 갔다. 따뜻한 카페라테 한잔 담아 근처 작은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이 나의 오전과 오후를 이어주는 쉼터다. 비둘기도 나무 그늘아래서 쉬고 고양이도 산책한다. 차갑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바람이 곁에 머문다. 초록, 연두, 하늘색을 보고 있으니 눈이 절로 호강이다. 하루 한번 보려고 한다. 의무적인 쉼이 필요하다.
근무 중 순간 '기분이 왜 이리 좋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일부로 이 말을 뱉기도 한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의미 없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출퇴근 시간, 일을 하고 산책을 하더라도 그냥 어련히 하는 일이 아닌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한 일이라며 되뇐다. 긍정적인 생각은 무의식에 자리 잡도록 매번 매 순간 의지로 노력이 필요한 반면 부정적인 생각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진드기 같다.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집 앞 학교 운동장에 나왔다. 걷다가 살살 뛰어볼까? 평소 공원을 뛸 때는 한 바퀴가 3km라서 이쯤 되면 몇 미터 뛰었겠다는 거리가 예상된다. 학교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았다. 뛰어도 뛰어도 1km 되었다는 알람이 없다. 같은 곳을 돌고 있으니 살짝 지루했다. 대신 공원에서 뛸 때보다 오르막이 없이니 비교적 속도는 낼 수 있었다. 2km 뛰었을 때 6분 4초다. 조금만 더 속력을 내면 5km를 30분 내로 들어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30분 내로 들어오면 10km를 한 시간 내로 완주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욕심이 난다.
10km를 한 시간 안에 완주한다는 건 꿈의 숫자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5km 완주도 헉헉 거리며 숨을 겨우 몰아쉬었다. 나름 전력질주로 달린 구간도 있었고 숨이 많이 가빴다. 가능할까? 생각만 하던 600 페이스를 유지했다.(6분 00초에 1km 뛰기) 30분 안에 들어왔다. 개인 기록 단축이다. 이거면 되지. 숨은 턱까지 차오르는데 마음 한편은 뜨거워졌다. 외부의 유혹적인 자극이 아닌 내가 만든 도파민이 가슴에서 솟구쳤다. 해냈다. 할 수 있다는 단어가 절로 새겨졌다. 자신감이라는 씨앗을 심었다.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는 근거를 저축해 둔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이렇게 하면 된다는 확신이 서는 순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1%를 쌓아나간다.
점심시간에 누렸던 작은 쉼과 근무할 때 스며든 긍정적인 생각들이 모여 좋은 결과로 이어진 걸까. 기록 단축은 뛰고 있었기에 언제든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다. 그러니 뭐든 하고 있자. 생각이든 몸을 움직이든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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