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이 주전부터 알고 있었다. 친정 김장이 언제인지.
시어머니는 올해 친정 김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 대신(?) 내가 김장을 해야 했다.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지. 시어머니가 친정김장에 처음 온건 2년 전. 크게 놀란 건 아닌데 의아하고 이게 맞나 싶기도 했다. 작년에도 참여하여 그러려니 했다. 김장이 쉬운 일이 아니다. 멀쩡하던 허리도 욱신하다. 본인 김장 아니면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터. 어머니 올해도 김장하러 오실 거죠?라고 먼저 묻지 못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오신다면 마다하지는 않는다. 이번에 오지 못했다. 결혼식 때문에. 당연히 결혼식이 중요하다.
토요일 오후, 큰 언니네는 어김없이 형부가 소소하게(?) 농사지은 배추를 가득 싣고 친정으로 오고 있었다. 남편과 조카는 식자재에서 장을 보고 곧 작은 언니네도 오기로 했다. 내가 먼저 친정에 일등으로 도착했다. 집이 컴컴하다. 아무도 없나 보다 하고 거실등을 켜는데 "누구 왔나?" 하는 소리가 큰방에서 들린다. 깜짝이야. 엄마 목소리에 힘이 없다. 어제 하루 종일 김장 양념을 혼자 만든다고 몸살이 난 거다. 하.. 이게 뭐라고 사 먹으면 되지. 당장 큰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양념 만든다고 골병들었다. 내 년부터 사 먹든지 하자!" 괜히 버럭 했다.
제사 끝낸 지 몇 년 안 된 거 같은데 이제 좀 쉬시나 했더니 김장 때문에 몸살 났다. 이제 겨우 일어날 만하단다. 작은 언니네도 도착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결혼식 갔다가 가면 늦겠지?라는 말로 김장에 오지 못한 아쉬움을 전했다. 이 정도면 내 년에는 내가 먼저 김장한다고 통보를 해야 되나 싶다. 남편과 통화한 어머니는 사돈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일요일 아침 호박죽과 시장 과자(사돈 입 심심할까 봐)를 우리 집에 가져다주고는 바로 결혼식장으로 가셨다.
딸보다 사돈이 낫다. 팔순 넘은 친정 엄마는 딸들 일 년 먹을 김치 양념 만든다고 몸살나 앓아누웠는데 말이다.
호박죽 맛도 볼 겸 퍼 먹다가 두 번 덜어먹었다. 밤과 땅콩 또 뭐 있었는데 아무튼 간도 딱이다. 언니들도 맛있다며 한번 더 데워먹었다. 정작 울 엄마는 입맛이 없다고 하였다. 엄마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다행히 어제보다는 생기 있어 보였다.
시어머니도 안 계시고 얼른 끝내자 싶어 나도 참여하였다. 남편은 수육을 삶고 김치를 통에 담으면 옮겼다. 김장의 목적은 큰 언니네와 작은 언니네가 주를 이룬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김치 통 두 개를 챙겼다. 두 개지만 언니집 하나보다 통이 작다. 김치가 없으면 늘 시어머니가 주시는데 올해는 어머니도 이모들과 김장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다.
갈색통과 빨간통은 전부 두 언니집거다.
언니도 팔순 넘은 엄마 몸살난 게 마음에 걸려 양념 비법을 물어본다. 엄마는 그거 뭐 이것저것 넣으면 되지 하고 얼버무렸다.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다.
"너네가 우예 하노. 김장하면서 이럴 때 다 같이 보고 하면 좋지"라고 한다. 내가 반박했다. 이럴 때라기엔 김장 아니더라도 두 달에 한 번은 본다며 김장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라고 했다.
엄마가 아프지 말아야 김장도 할 수 있다. 엄마가 아프지 않아야 내 년에 시어머니를 부를 수 있다. 띠 동갑 차이나는 시어머니 오래 보려면 우리 엄마 건강해야 한다. 김장 번거로운데 은근히 기다려진다. 아니 안 했으면 좋겠다. 배추 키우는 큰 형부 서운해하실 텐데. 양념만 사야 되나. 비싸다 하지 싶다. 김치 제일 적게 먹는 내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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