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시가 넘었다. 남편은 어머니 보험 청구를 도와주고 있었다. "언제 가요?" 큰 딸이 물었다. 동서네는 이미 저녁을 먹고 돌아간 뒤였다.
집으로 가기 전 새로 생긴 대형 다이소에 들르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 차갑고 포슬한 게 떨어지고 있었다. 전국에 눈소식이 있어도 늘 꿈쩍도 하지 않던 대구다. 귀하디 귀한 장면을 우리 네 식구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한 시간 반 남았다. 가는데만 20분. 큰딸은 급하게 살 목록을 나열한다. 차 안에는 둘째의 플레이리스트 곡이 흘러나왔다. 두 딸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남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원래 가야 할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섰다. 3분 늘어났다. 뒷 좌석에 앉은 딸에게 조금 두른다고 했더니 "오히려 좋아. 노래 더 들을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둘째. 큰아이는 "빨리 가야 되는데 그래야 더 구경하는데"라고 했다.
평소 필요한 물건은 사주지만 원하는 건 용돈에서 사라고 했다. 문제집은 사주지만 액세서리는 본인이 사야 했다. 기준은 있지만 큰 딸의 용돈은 늘 모자랐다. 그렇다고 매번 원하는 대로 사줄 수는 없었다.
대구에 첫눈이 온 것처럼 큰 딸에게 기회가 왔다. 신학기 겸 사고 싶은 물건을 담으라고 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었던 거다.
"언니 오늘 기분 좀 좋아 보이는 것 같지 않아?"
둘째가 말했다.
스터디 플래너와 비즈 공예 재료를 담기 시작한다. 사고 싶지만 용돈으로 사기엔 아까운.
큰 딸에게 점점 인색해지고 있다. 한결같지 못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에 따라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계절도 네 번이나 바뀌는데 큰 딸의 계절은 겨울에만 머물러있는 것 같다. 친구의 생일은 철두철미하다. 자정이 되면 선물을 주고 어떤 빵을 좋아하고, 몰래 가져다주는 이벤트까지. 그땐 원래 그런 거지 하면서도 나를 보며 한마디 할 때마다 영하의 날씨보다 더한 칼바람이 불었다. 겨울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달랐다. 날씨는 매서웠지만 마음은 덜 추웠다.
"빨리 와, 같이 언박싱하자"
큰딸이 먼저 동생을 불러 무언가 함께 하자는 게 얼마만인지. 귀하디 귀한 장면이다. 액세서리를 만들어 예쁘다고 보여주는 환한 미소에 또 속는 중이다. 플래너를 쓰고 액세서리를 만들 때마다 기억해 주길 바란다. 첫눈 내리던 오늘, 우리 가족이 같은 하늘을 바라본 순간을. 또 멀리 갔다. 다 내가 바라는 욕심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