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딸의 책상에 앉았다

by 햇님이반짝


일요일 여유로운 오후. 시장에 다녀온 남편은 만두와 떡볶이, 순대, 커피를 사 왔다. 식탁에서 분식을 나눠 먹었다. 커피를 챙겨 거실 벽에 붙은 책상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때 바로 옆 식탁에서 유튜브를 보기 시작하는 남편. 과자 봉지도 뜯었다. 와그작 거리는 소리가 거슬린다. 유튜브 소리도 나온다. 책이 읽히지 않는다. 내 버즈를 가져갔는데 왜 사용하지 않는 건지.




책과 독서대, 블루투스키보드, 노트와 샤프를 챙기고 학원에 간 큰 딸방으로 피신했다. 독립된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다. 고요하다. 큰딸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도 나만큼 아기자기한 거 좋아하는구나. 자석으로 붙인 시간표, 타이머, 정리함, 각양각색 형광펜과 친구가 만들어 준 액세서리까지 없는 게 없다.(어미마음: 이래서 공부에 집중되나;)


그중 책상 오른쪽 위에 작은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또박또박 적은 글씨, 빨간색으로 쓴 거보니 중요한 가보다. 정확한 분량은 아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야 할 방향은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앗, 여기까지 썼는데 방주인이 학원에서 돌아왔다. 오늘 재시(험) 없었나 보다. 예상보다 빨리 왔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말없이 들어왔다고 버럭 할까 봐 긴장했다. 다행히 혼나지 않았다. 펜 하나 써봤는데 얇고 잘 써진다고 했더니 오히려 새거 하나 받았다. 어머니 돈으로 산 거라며. 이왕 들어온 거 방 정리도 좀 해주지라는 말과 함께.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다. 창문 옆으로 찬기운이 스며들었다. '좀 춥네' 원룸 건물이라 아래층 화장실 사용하는 소리도 거실보다 더 잘 들렸다. 이 자리에 앉아있어 보니 딸이 공부하는 환경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도 아늑한 공간에서 글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방학이라고 새벽 세 시에도 안 자고 불이 켜있다. 노는지 공부하는지 알 길 없지만 믿는 수밖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려나. 맹신만은 않기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할 거 하면 좋겠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딸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지만 혼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벅찼다. 내가 이 방 차지하고 딸은 스터디카페에 보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작년 시험기간에 스터디 카페를 다녀온 후 다시 보내달라고 했었다. 아직 고등학생도 아닌데 벌써 가냐고 했다.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고려해 봐야겠다. 학원도 가고 스터티카페도 가야 되겠니? 시간도 돈도 고민된다. 학원 하나 끊으면 나도 같이 갈 수 있는데. 이럴 때 짠순이모드로 작동한다.




큰 딸의 책상에 앉았다. 우리 집인 듯 아닌 듯. 딸 방은 내 영역이 아니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막 바꿀 수도 없다. 쓰고 던진 휴지조각,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먹고 갖다 놓지 않은 접시와 컵까지 안 보면 되는데 보인다. 함부로(?) 치우지 않았다. 딸의 공간을 지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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