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일찍 마친 날. 해가 떠 있을 때 가족들과 함께 집에 머무르는 시간. 평소같으면 어딜 걸으러라도 나갔을 텐데 비소식이 있어 웬일로 다 같이 모여 각자의 고요한 시간을 보낸다.
꽤나 덥고 습했던오늘. 가만히 앉아있으니 살짝 온도가 올라감을 감지했다. 선풍기를 틀었더니 시원은 하지만 무언가 아쉬운 느낌. 앞쪽창가에 문이 열려있지만 바람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아 더위를 식히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추운 날 이사 온 후 여태 그렇게 더위를 느끼지 못했던 터라 바로 옆 블라인드에 가려진 창문을 열어볼 생각을 못했다. 블라인드를 젖히고 거실 창문을 열어보았다. 유레카! 숨통이 탁 트이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의 지정석은 이 창문 바로 옆이기에 자리를 옮길 생각조차 없었다. 이게 뭐라고 고작 창문을 열었을 뿐인데 진정한 휴식이 이런 것이다.카페 부럽지 않은 시간과 공간까지 제공받은 것 같다.살랑살랑 뒤늦은 봄바람이 불어와 내 귓가를 간지럽힌다.시원하다 못해 바람이 몰아칠 땐 서늘한 느낌까지도 들었다. 인위적인 시원함이 아닌 자연바람이 이렇게나 마음까지 탁 트이게 하다니새삼 와닿았다.
더위를 식혀줄 충분한 바람과 부드러운아이스라테커피고소한 크로와상 빵 냄새가 온 거실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보고 싶은 책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다. 현재 모든 것이 조화롭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지금이 좋다.여기까지는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은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너무 좋았는데.
오전에 수영장에 다녀온 큰아이는 피곤했는지 낮잠을 청하고 그나마 버티고 있는 둘째는 그리스만화책을 탭으로 보고 있다.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가 없다. 왜 아무도 말을 안 걸어서?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마음과 나의 손만 바삐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독서를 하다가 지금을 글로 반드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여 얼른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찰나의 순간을 놓칠세라 스쳐 지나가는 오늘의 장면을 글로 붙잡는다.여기까지였나.
이 글을 적는 와중 잠에서 깬 큰아이가 내 옆에서 빵을 먹는다. 그리고 자리를 비운다. 꼭 먹은 티를 내고 간다. 언제쯤이면 먹은 듯 안 먹은 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갈 수 있을까. 불러도 대답 없는 너. 빵 부스러기가 나의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옆에 머물고 있다. 이제 휴식 끝인가. 모른 체하고 계속 적고 싶다. 근데 신경 쓰인다. 누가 이것 좀 치워줬으면.다시 집중하고 싶다.
몇 분뒤 자리에 돌아온 아이가 빵 부스러기를 치운다. 고. 맙. 다.그리고 잠시 글에 집중할 수 없는 수다로 혼을 쏙 빼놓는다. 그으래 들어줄게. 지금 다 들어줄게. 얼른 들어야 빨리 끝이 난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면 그게 오히려 더 시간을 잡아먹는다. 갑자기 할 일이 많아진 느낌. 이야기를 끝낸 아이는 또 먹을 것을 가져온다. 뭔가 끝이 나지 않는 도돌이 같다. 결론은 잠시였지만 한 시간 전의 나의 상황은 완벽했으리만큼너무 행복했다는 것. 무엇보다 글에 몰입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아이들의 눈은 책을 향했고다시 먹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해 주어 너무 고맙고 감사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