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단짝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셨다. 다크의 묵직한 그 향이 글을쓰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고 지치지 않게계속 쓸 수 있도록 생각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카페라떼 아이스 하나주세요"
아이스아메리카노보다 천 원이 더 비싼 가격
약간의 사치를 부리는 느낌.글도 쓰지 않을 거면서 운동하러 나왔다가 괜히 사 먹는 것 같아서 찔렸던 걸까.
어느순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구의 눈치인지도 모르겠다.아니다. 빤하다. 누구긴 나처럼 커피좋아하는 남편 혼자 두고 나와서 많이 찔렸는가 보다. 혼자 나와 만끽하는 조용한 밤거리에 왜 움찔한 생각이 들었는지 운동하려고 나왔다가 농땡이치고 싶은 마음이 들켜버린 걸까?
그러나 이내 두 손에는 라떼 한잔이 밤산책를 동행하는 든든한 동지가 되었다. 이제 얘기해 보란다. 왜 자기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것도 해와 달이 맞교대한 늦은 시간에.
웃을 수도 있겠다. 고작 라떼 한잔에 사치라니
더군다나 여긴 별다방이 아니다.
백종원아저씨의 밝은 미소가 있는 그곳 빽다방이다.자주 오진 않지만 어쩌다 늦은 시간에 한 번씩 들린다.비교적 저렴한 그곳들을 자주 애용한다. 이사 전에는 메가에서의 죽순이, 이사 후로는 몬스터에서 무료쿠폰을 여러 번 사용할 정도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난 꼭 사서 집에서 마신다. 제일 편안한 공간에서)커피란 이미 나의 소소한 행복에 깊이 자리 잡은 지 오랜지다.
라떼의 첫 만남은 흥미롭다. 처음 빨대로 당기는 그 보드라운우유맛이 상냥한 목소리로 괜찮아 지금 걷고 있잖아라며속삭인다.두 번째로 빨대를 위로 살짝 올려마시는 진한 커피 맛은 씁쓸히 한마디를 더해 열심히 걸어야지라며 이내 채찍질을 한다.
두 가지의맛을 다음미하고 나면 이내 섞여라 하며 그 둘을 냉철한 얼음과함께 흔들흔들 회오리 물결을 일으킨다.
원래 운동 겸 걸으러 나올 때엔 커피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오늘은웬일인지 열심히 걷고 싶지 않았다. 여유롭고 부드러운 라떼한잔에 혼자 감성이 충만해진 날. 걷기보다 한 편의 글을 더 원하던 날이었다. 나의 생각주머니를 풀가동시켜 본다.행여나 금쪽같은시간 놓칠세라 남편 따라 나올까 봐 말도 하지 않고 나왔다.낮에 저녁 먹고 걸을 거라고 미리 말은 해두었다.이제 내가 집에서 사라져도 어련히 걸으러 나간다는 걸 잘 알고 있어 편하기도 하다.
(지금 이 사진 찍다 여태 적은 반이상의 글이 제목과 몇줄만 남은채 사라졌다 순간 정말 최악의 멘붕상태를 만끽함. 예전에 한번 경험하여 분명 저장 누른줄 ㅠ0ㅠ)
글쓰기 소재의 보물창고가 될 수 있는 이곳. 공원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부질없다. 지금부터 먹지 말아야겠다."
(누가 내 얘기했나?)
우리 집 앞공원에서고등학생들의 이야기.
"그냥 헤어지고 공부만 해라"
"공부만 할 수는 없고...
헤어지면 장점과 단점이 있어. 장점은 헤어지면 더 자유로워지고...."
(옆에서 계속 듣고있을 수만은 없었다. 천천히 걸었지만 점점 멀어지고 있어 듣지 못했다. 궁금한데)
맞은편에 외국인 부부가 지나간다.심각한 대화를 하는 것 같은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요즘 특이한 취미가 생겼다. 지나가는 말소리 행동하나 유심히 한번 더 보게 된다. 행여나 글로 이어질 수 있을까 봐.
대화를 통해 풀어간다.상대는 나.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나는 모든 이와 마음으로 소통하는 중이다.(일방적인 소통이 80% 차지하겠지만)
만보 못 걸으면 어때 글 한편이 나오는데
나뭇잎들이 시원한 밤바람을 스치며내 말이 맞다며격한 끄덕임으로 응원을 한다.오늘의 글은 라떼가 다했다. 이 핑계로 운동대신 또 사 먹게 생겼다. 그럴 바엔 다음엔 작정하고 텀블러를 들고 나와야지.또 마음먹고 나오면 생각은 거짓말처럼 쏙 들어가 버리겠지만 말이다.
어제 이 글을 적고 마무리하는 오늘도 탑 마일드 라떼와 함께 하고 있다. 라떼라는 사치 꽤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