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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Jul 11. 2023

둘째의 독촉스런 여행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여행 전부터 너무 기대된다며 발을 동동 구르며 온몸으로 설렘을 표현하는 둘째다. 낮에 기쁜 마음으로 축지법을 사용해(나혼산 이주승참고) 하교를 하였단다. 처음 보는 고등언니에게까지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자기 발걸음을 따라 했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찌 일정을 잡지 않을 수 있을까.




토요일 오후 엄마의 퇴근시간이 늦어 1박 2일 하기엔 다소 빡빡한 일정이다. 그럼에도 다 함께 잠시 콧바람 쇠러 가는 여정은 의무처럼 이루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의자에 가득 찬다. 순간 뭉클하다. 중1첫째차에 타자마자 블루투스 마이크를 찾는다. 언제 이렇게 자라 최신 유행하는 노래를 줄줄 부르는지 이제 차에선 더 이상 영어동요는 흐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장거리 이동시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어떻게 노래외웠는지 이런 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한다. 음정이 들어가서 잘 외운단다. 이때다 싶어 공부에도 음정을 넣어보는 게 어때라는 나이스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나란 엄마;; 두 시간 동안 정말 혼이 쏙 빠지는 체험. 그럼에도 장거리 이동시 휴대폰은 찾지 않는다. 머리를 숙여 폰을 보자니 속도 안 좋지만 할 수도 없다. 알뜰폰 4400원의 요금으론  데이터를 감당할 수 없기에 자연스레 이런 환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중등까지는 가능하겠지?)



안개는 그득하고 양 옆에는 우거진 나무들무성하다. 구불구불한 길을 하나 넘었다. 내비게이션에 덩그러니 서 있는 차 한 대가 외롭지만 꿋꿋해 보인다. 이 길만 지나면 오늘 하루 묵을  펜션에 도착하겠거니 여겼지만 그 뒤로도 이런 곳에 누가 와라는 길을  한참 동안 들어왔다.


늦게 도착한 만큼 얼른 준비하여 물놀이를 시작한다. 생각보다 차가운 물온도에 다른 방에 묵는 가족들은 일찍이 정리 한 모양이다. 그렇게 세 군데의 펜션에서 사용하는 수영장은 우리 아이들 전용이 되었다. 덜덜 떨 때까지 수영을 하고 이내 스파로 몸을 녹였다.


 

로운 곳에서의 글 쓰기는 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두 시간 동안 열심히 달려온 보람을 잠시 느껴보려 한다. 산세도 좋고 공기마저 코가 뻥 뚫리는 상쾌함. '딸깍'거리며 따지는 캔맥소리마저 경쾌하다. 목구멍이 타들어갈 만큼  한 모금 쭈욱 들이키며 타닥타닥 키패드를 두드린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현재 지붕 위에 조용히 토독토독 거리는 울림이 내 마음도 열라며 노크 중이다. 



이번 여행은 사실 오기 전까지 큰 설렘은 없었다. 사귀차니즘이 도진 것도 있고 펜션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지 한 달 전부터 둘째의 어디 안 가냐는 성화에 지칠 때쯤 남편이 비교적 저렴하고 아이들좋고(수영장 있는 펜션) 나도 좋은 곳을(바다 가까운 곳) 선택하였다. 내 기분 따위 별감흥이 없더라도 막상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이내 오길 잘했다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다.




둘째가 아빠에게 묻는다.



: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슴은 뭘까요?



아빠: 잘 모르겠는데~



딸: 굿 아이디어,


디어가 사슴이잖아요.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사슴.



글을 적고 있는 와중 뜬금없이 훅 들어오는 질문에 귀를 안 기울일 수가 없었다. 소소한 말 한마디까지 남기고 싶은 순간이었다.



한잔의 술잔을 기울이며 야식과 함께 아쉬운 밤을 꼭 부여잡고 싶다.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이미 바깥은 동이 트고 있었다.




퇴실하기 전 아쉬운 마음에 한번 더 수영을 하고  다음 일정인  바다 둘레길을 걷는다.  자연스레 더위를 식힐 여름 메뉴를 한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 앞 어느 조용한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여행의 종점을 찍는다. 바다를 보며 멍 때리는 순간 현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망각을 일으킨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노래방개시가 되었다. 엄마퀸카를 연신 불러대며 두 딸아이는 포인트칼군무를 뿜어낸다. 평소 거울만 보면 연습하던 춤이 이때 빛을 발한다. 이 순간이 행복임을. 몇 년만 지나도 볼  없겠지.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요즘 노사연 노래가 그렇게 좋더라. 이 노래 아까 들었다고 난리다. 이런 억울한 상황이 있나. 본인들 듣고 싶은 노래 나올 때 묵묵히 들어주었더니 엄마 듣고 싶은 노래 나왔다고 난리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노사연노래를 떼창 한다.  그럴 거면서 왜 투덜거렸는지 모르겠다.


거의 도착할 무렵 둘 다 저녁 하기를 포기한다. 대형마트에 들러 딱 세 가지만 구입 후 깔끔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이렇게 다녀왔으니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그저 째의 독촉스러움이라며  다녀와줬잖아라고 생각한 나를 나무라야겠다. 이렇게 보챌날도 얼마 남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벌써 찡하다. 함께 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추억을 남겨야 함을. 정말 금방 자란다. 오히려 둘째 덕분에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더욱 진한 추억이 되었다. 고마운 마음을 오늘 꼭 짧게라도 표현해야겠다. 비록 짧은 여행이었지만 또 하루를 살아감에 작은 불씨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사진출처: 햇님이 반짝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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