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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Sep 17. 2023

음주루틴을 지키지 못한 최후


남편과 나의 술자리 스타일은 완전 반대다.

나는 진득하니 조용하며 서두르지 않는 술자리가 좋다. 그래서 혼술이 제격이다. 맥주 한잔 두 잔에 세월아 네월아 시간이 가든 말든 따라놓고 배부르지 않은 마른안주와 함께 천천히 음미 하루의 일상을 보상다. 반대로 남편은 전형적인 회식스타일이다. 빨리 먹고 많이 마신다. 그런데 집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우린 같이 술상을 겸수가 없다. 말 나들이를 갔을 때 외식을 하면 차가 있어 때론 나 혼자 반주를 즐기곤 했다. 초반까지만 해도 이주에 한 번씩 아이들이 할머니집에 박을  가끔 집에서 남편이랑 한잔하기도 했는데 즘은 그마저도 귀한 시간이 되었다. 할머니가(시엄뉘) 더 바쁘시다.




오랜만에 가족외식을 했다. 그 메뉴는 바로 소갈빗살. 말만 들어도 침샘이 절로 솟구친다. 우리 집 근처 새로 뚫은 맛집이다. 거의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곳은 리 가족 모두가 흡족 곳이다. 미리 받은 나의 추석상여금은 고스란히 통장으로 프리패스했지만 큰딸 자궁경부암예방주사도 했기에 든든히 챙겨 먹어야 한다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었다. 그 돈이 내 돈이지만 남편의 개인용돈으로 쏜다는 말에 기분만 한껏 내본다.



휴무 날이었던 나는 아침 겸 점심으로 딸기우유와 감자샐러드 넣은 모닝빵 하나 먹은 게 다였다. 그리고 허전한 뱃속을 뒤로하고 도서관도 갈 겸 만보 넘게 걸었다. 굶주렸다 먹는 고기와 오랜만에 남편과 한잔할 생각에 저녁외식이 더욱 떠있었다. 게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는 듯 (酒)군을 소환했다. 톡톡 쏘는 발효된 보리음료와 영롱하고도 거짓말은 1도 하지 못할 훤 다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빛깔을 한데 섞는다. 시원하게 말아보는(?) 고운 자태에 우리의 눈빛도 동시에 반짝였다.



짠! 이 얼마 만에 부딪히는 술잔인가. 먹기 좋게 익은 고기를 아낌없이 나의 자리에 올려주는 배려에 이게 뭐라고 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남편의 손에 든 집게는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아이들은 배고픈 아기새들처럼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굽는 속도가 입에 들어가는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워 김치말이국수로 잠시 시간을 벌여놓는다. 일단 아이들 먼저 배불리 먹이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제야 젓가락질이 한결 여유롭다. 살짝 오른 취기는 6년간 연애했던 그 당시 남자 친구를 떠오르게 했다. 연이은 술잔에 고기도 지글지글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어 올랐다. 남편도 집 앞이라 마음 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잔을 드는 횟수가 빨라졌다. 남편의 속도에 동요하다 보니 나의 주량을 이미 다. 모처럼 나온 기회에 나는 남편을 남편은 나를 생각해 서로의 속도를 맞춰 주었다. 아니 왠지 나만 맞춰주고 있는 것 같다.(고기 구워주는 배려는 잊은 지 오래다)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중간에 알싸한 청양고추의 난동으로 정신이 번쩍 들어 한동안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잘라서 먹으면 견딜만하다"라는 단순한 남편의 한마디에 묘하게 함축적인 의미 말로 들렸다. 청양고추는 잠깐의 충격으로 모든 걸 마비시킨다. 순간 우리네 결혼 생활과 맞물리는 듯했다. 중간중간 힘든 일이 있어도 한 템포씩 쉬어가며 견뎌내자. 우리 지금 잘하고 있으니 조금씩 배려하며 앞으로도 살아보자 위로와 격려의 환청으로 들렸다. 매우면 다음에 안 먹으면 그만인 것을 매운 고통이 지나 잊힐 때쯤 굳이 더 잘게 잘라 다시금 먹어보니 그나마 참을만했다. 이렇게 먹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조절해 나가는 건가. 청양고추가 뭐라고.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나 싶다가도 한번 더 되새기게 되었다. 


된장찌개에 넣은 잡곡밥도 보글보글 끓으며 마지막 술잔이 부딪힐 때까지 속을 든든히 지켜줄 것만 같았다.


된장찌게는 역시나 고깃집이 최고이며 청양고추는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다음날 위장까지 지켜주는 이는 어느 누구도 없었으며 예상한 듯 예상하지 못한 술병이 걸려 오전 내도록 골골거렸다. 역시나 나만음주루틴을 지키지 못한 최후를 맞이하며 뼈저리게 후회했다. 소소한 나의 혼술시간도 남편과의 술자리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금주할 절호의 기회일까.(내일부터 다이어트라는 말과 같겠지만) 이 날 가족 외식이 불러온 결말은 아니 술자리는 자기만의 속도와 루틴은 꼭 지켜나가야 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역시나 사람은 혹독한 체험(?)을 통해야만 정신을 차리는가 보다.









사진출처: 햇님이반짝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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